[최상철의 건축이야기] 마루

가장 높고 으뜸이라는 의미 담은...

옛날 마루는 참 높기도 높았다. 고대광실 대갓집은 더했다. 그렇게 마루는 집주인의 신분과 위엄을 상징하는 주요 건축소재였다. 물론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비록 지금은 마루에 걸터앉아 있을 일도 별로 없고, 또 마루라고 해봐야 가끔 음식점에서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설 때, 잠시 몇 발짝 디디게 되는 하잘 것 없는 존재로 여기고 있지만, 원래 마루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옛날 왕조시대에 가장 지엄한 존재인 왕의 묘호(廟號)에는 대부분 「종(宗)」이라는 호칭이 따라붙는다. 세종, 문종, 단종 등이 그 예인데, 이게 모두 다 「마루 종(宗)」이라고 하는 글자로 되어있다. 왕의 존칭이 마루와 연관되어 있는 탓이다. 아무리 그래도 왕이 마루라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시대 때,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하던 내물왕부터는 왕을 「마루」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지금의 마루와는 그 소리가 조금 다른 「마립간」이었다. 마립간은 「머리」 또는 「마루」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단군왕검의 전설이 서린 강화도 마니산도 「머리(頭)산」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곱씹어볼수록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래저래 마루는 가장 높고, 으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마루는 「높은 존재」를 상징했던 탓에, 건축물에서도 그 특성상 가장 높은 부위에 설치되는 부재의 이름을 「용마루」라고 한다. 그것도 그냥 마루가 아니라, 왕을 상징하는 「용(龍)」까지 덧붙여서 용마루라고 했다. 또 마룻대공이나 종보(宗樑)는 다른 부재보다도 더 위에 설치되는 것을 특별히 지칭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옛날에도 사람이 죽으면, 그 지붕 용마루로 올라가서 고인의 흰 적삼을 허공에 흔들며 초혼(招魂)을 하는 절차가 따로 있었다.

 

어쨌든 마루가 「높은 존재」라는 사실이 다소 거슬렸던지, 아예 용마루 자체를 없애려고 한 흔적도 있다. 경복궁에 가보면 강령전이나 교태전이 있는데, 그 기와지붕에는 이상하게도 용마루가 없다. 가장 지엄한 왕과 왕비의 거처인데, 그 위에 용마루를 더 얹어놓는다는 것은 당시로서 상당히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왕과 왕비가 살던 강령전이나 교태전을 자세히 보면 용마루를 없애고, 대신 그 지붕 꼭대기를 회반죽으로 하얗게 발라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럴 것까지 있었겠냐 싶지만, 건축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지금은 마루라고 해봐야 그저 액세서리 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루의 시작은 그렇게 심히 장대하였다. 그 드높은 뜻을 함축하고 있던 마루가 언제부턴가 건축물의 한 소재로서 우리 곁에 슬그머니 내려와 있다. 그것도 사람들의 냄새나는 발밑을 천연덕스럽게 제 온 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설사 지금은 낮은 곳에서 초라하게 웅크리고 있다고 해서 허투루 볼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