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내를 벗어나 호남고속도로 진입로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편에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러브 스토리가 살아 숨쉬는 쌍릉이 나타난다. 행정구역상 익산시 석왕동 산 55, 56번지인 이곳은 1963년 국가사적 87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만3884㎡다. 남북으로 약 150m를 사이에 두고 2개의 봉분이 놓여 있어 쌍릉이라 부른다.
그 가운데 북쪽에 있는 능은 지름 30m, 높이 5m로 조금 더 큰데 ‘말통대왕릉’ ‘대왕묘’로, 남쪽에 있는 규모가 약간 작은 능은 지름 24m, 높이 3.5m로 ‘소왕릉’ ‘소왕묘’로 불려 왔다. 여기서 ‘말통’은 서동의 이름인 ‘마동’이 잘못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이 능은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것이다. 충남 부여의 능산리 왕릉과 같은 백제 후기(7세기 전반)의 굴식 돌발무덤(황혈식 석실분) 형식이다. 내부 구조는 넓은 판석으로 석실과 연도를 만들었다.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이 내려왔으나 몇 년전 석상과 장명등 석수 등을 봉토 왼쪽에 설치했다. 고려사를 비롯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는 이 쌍릉이 서동왕자인 백제 제30대 무왕(武王)과 부인이었던 선화비의 무덤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고분은 고려 충숙왕 13년 왜구에 의해 도굴 당했다. 이후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쓰이(谷井濟一)에 의해 내부가 조사되었으며 일부 남아있던 사발형 토기 1점과 나무 관(棺)은 복원되어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나무 관은 바닥 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관 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 무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근처에 선화공주의 요청으로 세웠다는 미륵사 등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일 것으로 짐작되고 있으나 뚜렷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익산시는 2004년 36억 원을 들여 인근 토지를 매입하고 이 일대에 ‘사랑의 공원’을 조성했다.
최근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주축이 돼 미륵사지와 쌍릉, 왕궁리 등 유적이 산재한 익산시 역사지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키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익산시는 ‘고도보존특별법’에 따라 경주와 부여, 공주와 함께 ‘고도(古都)’로 지정된 바 있다. 1400년전 백제의 꿈이 재현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