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건축단상] 건축공간의 속성

우리의 마음과 행동 제어

영국의 유명한 수상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일찍이 “인간이 건물을 만들지만, 건물 또한 인간을 만든다”라고 하였다. 인간에게 미치는 건축의 지대한 영향력을 지적하는 좋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건축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나쁜 건축은 나쁜 사람을 만든다. 무미건조한 건축은 사람을 무미건조하게, 느낌이 풍성한 건축은 사람을 느낌이 풍성하게 한다. 시적(詩的)인 공간은 사람을 시적으로 만든다. 복잡한 공간은 사람을 복잡하게 만든다.

 

도시의 대규모 사무소 건축에서는,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규격화되고 각박하고 경쟁적인 느낌이 난다. 매끈하고 넓은 유리창에서는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이곳의 건축은 단순하지 않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물리적 틀이자 정신적 틀로 인식된다. 경쟁이 심한 상업지역에서는 고층빌딩 사이로 빠른 발걸음을 옮겨야 생존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도시의 상업건축이 우리를 바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마을에서는 사람들도 여유롭다. 뛰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어쩐지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천천히 걸어야 할 것 같다. 만나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본 듯하다. 길은 좁고 휘어져 있고 담은 낮다. 실내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길에서도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건물 크기에 주눅 들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주인인 것 같다. 건물의 재료도 사람도 모두 자연의 일부로 느껴진다. 생각도 자유로워지고 강박관념도 없다. 건축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 묻혀있는 오래된 사찰건물에는 불교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많다. 왜 그곳에 가고 싶은가. 우리는 사찰에 불교라는 특정 종교를 위한 건물로서 만 가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살펴보면, 그 곳에는 사찰건축 만이 갖고 있는 가람배치라는 독특한 건축적 공간을 느끼기 위해 찾아가는 것이다.

 

일주문으로 이어지는 접근로 옆에 구불구불 굽이쳐 속세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은 세심(洗心), 우리 자신의 마음을 씻도록 하게한다. 담도 없는 데, 일주문이라는 문은 필수이다. 이 문은 우리에게 속세와의 경계에 있는 공간적 심리적 문을 각인시킨다.

 

이어지는 금강문과 천왕문은 우리를 사찰의 중심부로 차례대로 유인하는 공간의 포인트들이다. 우리를 금당 앞마당으로 인도하는 누(樓)의 밑 계단은 높이가 낮아, 이곳을 지날 때 우리를 꼭 고개를 숙이듯이 들어가도록 만든다. 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절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금당은 누계단에서는 보이지 않다가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면 계단 끝에서 서서히 등장한다.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고 난 후, 무대의 커튼이 겉이듯 극적으로 본당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가람배치의 독특한 기법은 사찰건축의 공간적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건축 공간이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만들고 제어하는 것이다.

 

/건축가·전주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