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외에는 대안이 없다.'
위기에 처한 진보운동에 대한 미국의 문화비평가 리베커 쏘울닛(Rebecca Solnit)의 진단이다.
그는 자신의 책 『어둠속의 희망』(Hope in the Dark)에서 9.11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겪은 '참담한 패배'의 어두운 현실에서 오히려 희망의 빛을 찾고 있다.
그것은 당위적 차원에서의 절규도 아니요 소박한 낙관주의에 근거한 부질없는 외침도 아니다. 대학시절부터 환경, 반핵, 인권운동에 열렬히 참여했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의 냉철한 점검에 근거한 창조적 세상바라보기의 산물이다. 새로운 출발을 위한 굳건한 자기 다짐이요, 짐 싸서 '귀가'하려는 사람들을 돌려세우려는 열정적 호소라 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어둠'이라 부르는 것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자고 권한다. 그것은 무덤의 어둠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궁의 어둠일 수 있다. 절망 아닌 희망 찾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절망과 마찬가지로 희망도 세계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들 마음의 상태일 뿐이다.
'희망을 배신하는 죄야말로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유일한 죄'라는 말은 이런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런 믿음 아래 그는 지난날의 '패배들'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엄밀하게 점검한다. '거짓 희망'과 '안이한 좌절'을 가려내며 그림자속에 감추어진 역사를 다시 조명하는 것이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진보운동의 흐름을 크게 바꿔놓은, 베를린장벽의 붕괴(1989)에서 전세계적 평화운동(2003)에 이르기까지의 굵직한 다섯 가지 사건들이다.
쏘울닛은 이들의 의미를 재해석하면서,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는 자발적이고 광범위한 전 지구적 운동이 물밑에서 꾸준히 성장해왔음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책의 후반은 이러한 역사 진단에 근거한 처방이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운동 주체들의 자발성과 분방한 창의력이다. 예술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변화의 원동력을 상상력과 그것에 뿌리를 내린 희망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이 조급증이요 편협함이다. 직접적 결과만을 중시하는 태도나 과거의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혁명론에 입각한 분파주의는 절망의 기운만 팽배시켜 패배를 자초하기 쉽다. 전면적 승리가 아니면 뭐든 실패로 간주하는 완벽주의도 처음부터 포기하게 하거나 가능한 승리조차 폄하하게 할 염려가 있다. 동지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순수주의적 이분법 또한 변화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경계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순록을 살리는 비아그라!'
이 책에는 이와 같은 역발상의 창조적 상상력이 넘쳐난다. 딱딱한 사회과학적 운동론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비폭력과 상상력이 도도한 변혁의 흐름에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독특한 글쓰기를 통해 입증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현실이 참 끔찍하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낫다”는 촘스키의 인식을 공유하면서 영국의 '거리 되찾기 운동'에서 볼 수 있었던 "해학, 창조성, 터무니없음, 흥청거림”을 구시대적 변혁론의 엄숙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긍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쉽게 뒤돌아서서 '대통령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우리들 진보진영에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종민·전북대 영문과 교수
서울대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추진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지금은 문광부 산하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음악 화살처럼 꽂히다' '그래 너희 뜻대로 해라-공저' '서정인의 삶과 문학/달궁 가는길-편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