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설' 익산 금마 사는 비전향장기수 김기찬씨

1958년 아내 아들 북에 남긴채 남파...20년 수감뒤 결혼 "죽기전 북송 희망"

익산시 금마면에 사는 비전향장기수 김기찬씨가 북에 있는 아들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이강민기자 이강민(lgm19740@jjan.kr)

“잘 있다가 꼭 돌아오겠소.”

 

39살. 28살 젊은 아내와 3살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남한에서 공작활동을 하기 위해 아주 잠깐 북녘을 떠났다.

 

59살. 20년의 교도소 수감생활을 마치고 남녘 사회의 볕을 쬐었지만 그는 여전히 비전향장기수다.

 

89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길게 남지 않은 삶은 아직 송환의 꿈을 접지 않았다. 습관이 된 체념과 단념에 맞서 희망은 면역력을 한층 키워가고 있다.

 

북녘에서 살았던 8년의 세월을 이어가기 위해 20년의 수감생활, 50년의 그리움을 안고 살고 있는 김기찬씨(89·익산시 금마면)는 민족이 대이동하는 설을 맞아 북으로의 역귀성을 꿈꾼다.

 

익산군 황화면(현재 충남 논산시)에서 태어난 김씨는 한국전쟁이 터진 1950년 9월 북한으로 올라가 인민군에 지원했다. 일본 동경의 척식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익힌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돼 자신의 양심에 따라 내린 판단이었다. 전쟁 뒤에는 함경북도 청진에 자리를 잡아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다. 결혼 5년여 만인 1958년, 부인과 어린 아들을 북에 남긴 채 대남공작을 위해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른바 간첩활동 1개월 만에 김씨는 붙잡혔고 대전형무소 등에서의 수감생활이 시작됐다.

 

가족이 있는 북녘으로의 송환을 바라며 전향하지 않았던 김씨는 감옥에서의 20년이 지난 어느 날, 낯선 젊은이들에 의해 강제로 전향서에 지장을 찍게 됐다고 회고했다. 수감생활은 그렇게 마감됐지만 부인과 아들이 있는 북한으로 가기 위한 그의 바람은 계속됐다.

 

그러던 중 딸아이를 둔 한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남한에서의 또 하나의 삶이 시작됐지만 “북에 갈 여건이 된다면 미련 없이 떠난다”는 조건을 달았다.

 

언제든 북녘으로 보내주겠다던 부인 오영순씨(84)는 병환으로 9개월째 병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나 보내준다던 아내가 먼저 가게 생겼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2000년 1차 북송 때 북으로 간 동료들이 한 없이 부러웠지만 2차 북송 명단에 포함된 것을 위안 삼았다. 8년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는 북송의 꿈이지만 최근 6자회담과 남북장관급 회담 등을 유심히 보며 김씨는 또 다시 희망을 갖는다.

 

북녘에 두고 온 부인 이분순씨(78)를 만나거들랑 며칠 밤을 꼬박 새며 얘기해도 모자랄 그리움과 미안함, 짧은 5년의 결혼생활 뒤 쌓인 50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다는 김씨.

 

3살 때 헤어져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선 아들(53)을 볼 수 만 있다면 숱하게 써 왔지만 부치지 못해 책이 된 편지 다발을 전하고 싶다. 비록 아들을 만나지 못한 채 죽더라도, 서로 보고싶고 외로운 인고의 세월이었지만 역사와 양심에 비춰 절대 부끄럽게 살지는 않았다는, 죄스럽지만 어찌 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올해가 될 지, 내년이 될 지”라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직감하는 김씨는 “가족을 볼 수 없다는 아픔보다 통일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못한 게 더 한스럽다”고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