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람이 죽고 사는 극한 상황에 다다르면 그냥 일곱 여덟이 아니라, 아주 더 많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구사일생이라고 한다. 또 임금은 겹겹이 둘러쳐진 구중궁궐에 살았고, 여우도 꼬리가 아홉 달린 구미호라야 제격이다. 녹차도 구중구포라고해서 아홉 번을 덖어야 제대로 맛이 우러난다고 한다. 이렇게 아홉(九)이라는 숫자는 알게 모르게 우리 실생활에서 극수(極數)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몸은 비록 하나(一)지만 머리 몸통 다리 셋으로 나누면 천지인 삼(三)이 되고, 그걸 다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죽 훑어보면 다섯(五)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또 남자의 몸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나있다. 그런데 「일삼오칠구」 홀수 중에서 아홉이라는 숫자가 많고 크기는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서 아홉에 하나를 더해서 열(十)이 된 여자만이 비로소 몸을 열고(開)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숫자로만 보면 여자가 더 완전하다는 얘기가 된다.
건축에서도 이러한 숫자가 곧잘 적절한 상징체계로 사용되곤 하였는데, 일주문에서의 일(一)이 그렇고, 지붕과 기둥 그리고 기단으로 삼분(三分)되는 것이 그러하며, 또 자세히 살펴보면 집의 규모나 칸수를 정할 때도 나름대로의 다양한 숫자를 배치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초가삼간집에 가면 삼(三)을 보게 되고, 다섯 칸 집이나 일곱 칸 집에서는 오(五)와 칠(七)이라는 숫자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건축에서 사용하는 숫자는 거의 대부분 홀수인 양수(陽數)를 사용하고 있다. 가끔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음수(陰數)를 세워놓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금 격이 낮은 건축물의 경우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우리주변에 있는 전주향교만 봐도 그렇다. 중심건축물인 명륜당은 전면 다섯 칸 집인데 비해서, 좌우별채는 그 격을 조금 떨어뜨려서 음수인 여섯 칸 집으로 세워놓았다. 또 대성전은 전체 9칸이지만, 그 좌우에 도열해 있는 동무(東?)와 서무((西?)는 각각 18칸으로 구성해 놓았다. 음양이론에 따른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같은 양(陽)의 숫자를 사용하면서도 칸수를 일부러 조절하여 주종을 구분해놓기도 한다. 사찰에서도 대웅전이 일곱 칸이면, 그 부속건축물들은 다섯 칸이나 세 칸으로 줄여놓았다. 이렇게 우리 건축물에는 다양한 숫자가 숨어있게 마련인데, 그 숫자만 풀어보며 돌아다녀도 건축물을 보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해진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