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보살이라고 지칭한다면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행복과 이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집착하는 상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깊고 깊은 인연이 있어서 만났으니 아름다운 인연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서로 노력하다보면 자연이 친숙하게 되고 완벽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갈 수 있을 것이며 상호 존중의 분위기도 형성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중한 인연은 그냥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로의 소중한 만남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불쾌감을 주어서도 안 되고 거부감을 주어서도 안 된다. 항상 얼굴에는 상냥하게 미소를 머금고 있어야 하며 부드러운 말, 청순한 에티켓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겸허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한없이 자상하고 친절한 봉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진여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 불보살님의 화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살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에 환희심이 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들에도 한 가지 기쁜 마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이웃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마치 샘물처럼 솟아나올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벅찬 환희로움으로 봉사의 삶, 이타행의 실천자로 거듭나 보살행을 시작하는 것이니, 다시 말하자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 모두에 긍지와 보람, 감동과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보살의 첫 번째 단계인 환희지 보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타행의 실천자는 어떤 것이 더럽다고 생각한다던지 공연히 싫어하는 혐오감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계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분별심을 버리고 매사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함과 더러움, 많음과 적음, 귀함과 천함이라는 상대적이고 편향적인 잘못된 가치관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는 중도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보살의 두 번째 단계인 무구지 보살이라고 하는 것이다. 더러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이 다 청량하고 깨끗하며 한 가지도 버릴 것이 없다는 논리이다.
이 세상이 더없이 청량하고 아름답다는 긍정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로 생각이 전환되면 모두가 다 아름답게 보여 질 것이며 그 아름다운 세계 안에는 불평이나, 불만, 미움이나 시기 질투, 거짓 따위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중심적이었던 이기적 사고에서 벗어나 이웃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무위심으로 가꾸어 나가는 그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나라, 장엄불국토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그토록 힘들어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바세계가 바로 다름 아닌 부처님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었음을 알게 된 다음 세상을 바라보면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처 아닌 것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요, 이웃들에게 베푸는 일이 모두다. 제불보살에게 공양 올리는 일이니 태양처럼 찬란하게 온 세상을 비추어줄 수 있는 이타의 삶이야말로 어찌 기쁘고 기쁘다 하지 아니할 것인가?
/승천(정읍 일광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