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무한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과학기술문명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는 대규모 도시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공장은 인류의 삶을 지속적으로 윤택하게 할 수 있을까? 인류의 미래와 연관된 이러한 의문에 대해 누구도 단정적인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1973년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독일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E. 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현대기술문명 전반에 걸친 반성과 비판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책이다. 그는 시장 가치를 우선시하는 기존의 경제학을 '미치광이 경제주의'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경제학의 목표와 방법을 전면 재수정하는 이른바 초경제학을 주창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과 자연환경이라는 화두를 경제학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자연은 유한한데 유물주의(물질주의)는 무한한 성장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새로운 생산방법과 소비생활에 의한 새로운 생활양식과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경제관은 '중간기술' 이론으로 구체화된다. 거대 기업에 의한 대량 생산 기술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화석 연료와 같은 자원을 낭비하며 인간성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생태학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되지 않는, 대중에 의한 소규모 생산 기술로 생활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중간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 중심의 기술, 비폭력적 기술로의 전환을 그는 책상머리에서만 설파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미얀마 정부의 경제 고문으로 초빙 받는 등 인도와 페루 등 제3세계의 새로운 경제개발 모델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맹목적인 부의 추구와 거대주의 기계화가 최고의 가치로 숭앙 받던 당시에 '스몰(Small)' 사상으로 맞섰던 그는 경제학자이기 전에 행동하는 사상가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이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인류 최대의 자원인 인간교육을 제대로 실현해야 하는데, 교육에 있어서 형이상학적 사색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는 것도 슈마허다운 발상이다. 이는 그가 동양적 불교경제학에 심취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자연환경을 개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과의 조화를 꾀하는 대상으로 바라본 동양적 자연관이 그의 사상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부동산 숭배주의자들에게 기어이 이 책을 한 권씩 사주고 싶다. 농업에 있어서 토지도 생산의 터전으로 인식하기 전에 건강과 아름다움과 삶의 영속성을 보장하는 터전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인이 자기 억제의 원리를 상실한 원인으로 탐욕과 질투심을 든다. 탐욕과 질투심을 버리고 작은 것 속에 깃들어 있는 예지를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제안은 간명하지만 우리가 귀 기울여 경청할 만하다.
"사치품을 필수품이 되지 않도록 하며, 필수품의 수를 줄이거나 질을 간소화시키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