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어도 탈당은 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마침내 탈당을 결심했다.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겠다는 대의명분을 걸고 야심차게 신당을 창당했으나 현실정치의 높은 벽만 확인하고 결국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당까지 깨가며 세운 대의명문인데 지역주의 청산은 고사하고 신당의 운명마저 풍전등화이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꼭 노 대통령만 탓할 일은 못된다. 국민 직선으로 당선된 전임 대통령 셋 모두가 임기 말 레임덕에 걸려 내쫒기듯 탈당을 했는데 오직 노 대통령 혼자만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다만 차이가 있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대선 공정관리를 명분으로 '자청 탈당'을,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여당이 앞장서 요구한 '타의의 탈당'을,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당의 입지를 넓혀주기 위한 '자의반 타의반' 탈당을 한데 비해 노 대통령은 인기 하락에 따른 '울며 겨자 먹기식 탈당'을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대통령의 탈당이 다음 정권을 창출하기 위한 정치적 속임수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노 대통령만 부도덕하고 술수가 많은 정치인으로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 보수언론과 야당이 총동원돼 위장이혼이다, 기획탈당이다, 정당세탁이다, 선거전략이다 현란한 수사를 다 동원하며 무차별 공세를 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언론사는 노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임중 여당을 두번이나 이탈하는 첫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고 친절하게 해설까지 덧붙여 보도를 하기도 한다. 하기야 탄핵을 당했을 때도 고도의 술책에 걸려든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할 정도였으니까 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고 노 대통령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결 상대는 무조건 굴복시켜야 한다는 승부욕, 정도가 지나친 편가르기, 한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타협을 하지 않는 독선은 국민들에게 거부감만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탈당을 했다고 해서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180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옷을 바꿔 입었다고 사람이 바뀐 것이 아닌 이치와 같다. 앞으로 남은 임기 1년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