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주를 떠나던 아침 때 아닌 겨울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인형이 우산을 쓰고 내려와 “귀거래사” 병풍 글씨 한벌을 보자기에 싸 건네며 희철이 성 잘 가, 라고 한 그날의 부드럽고 깊숙한 이별사, 그 말 한마디가 여기 일산으로 이사 와서 3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리움으로 박혀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 일산이야 문화시설이나 공원들이 잘 가꾸어져 있어 꽃과 호수의 도시로 이름 나 있지만 아직도 여기 인정과 풍물이 낯설어 나를 낳아서 길러준 고향만 이야 하겠습니까.
나이 들면 최초로 찾아오는 병이 고독이고 그리움이라 더니 나는 날마다 그리운 사람들 만나러 그 쪽으로 달려 가곤 한답니다.
남운형! 보고 싶습니다, 만나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가 비록 전화 한통 건네지 못하여 서로 소식 없을지라도 인형이 나를 알고 내가 인형을 잘 알고 있으므로 내가 날마다 또박또박 백지위에 쓴 마음의 편지는 받아 보았을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송희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