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성이 없다는 말은 방에서 잠을자면 침실이고, 밥을 먹으면 식당이고, 일을 하면 작업장이고, 공부를 하면 공부방이 되듯이 건물도 주택으로 사용하면 주택이고, 사무실로 사용하면 오피스고, 영화를 상영하면 영화관이 된다.
건물이든 건물속의 실이든 고유의 용도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용도에 따라 이미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물에 붙여진 이름은 언제든 변할 수 있기에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용도에 따라 성격이 제 규정 되어야 한다.
규범적인 사고에서 사건 중심적인 사고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건축 책 중에서도 건축물을 용도별로 분리하여 용도별로 기술해 놓은 각론이란 책이 있다.
이런한 책은 건물마다 동일성이 있다라는 전제를 배경에 깔아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나 문화 속에서 우리는 학교 같다, 은행 같다, 병원 같다, 관공서 같다 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건물들이 다른 용도로 변화되어 수련원이 되거나, 오피스텔이 되거나, 전혀 예상하지 않는 용도로 변화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설명하기 어려워 진다.
시내를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무심히 바라보면 한배에서 나온 형제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놀랍도록 빠른 경제의 발전과 그에 뜻을 같이한 모더니즘적인 배경이 결합된 경제원칙에 충실한 건물들이다.
내용물은 거의 같고 표피만 조금씩 다를 뿐인 건물들이다.
건물을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고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다목적성이 그속에 깔려 있다.
건물의 수명은 수십년인데 비해, 용도의 수명은 수년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만 바뀌게 되면, 좀더 많은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된다.
요즈음 새롭게 소개되는 건축물들은 처음 설계할 당시부터 다른 개념을 가지고 접근 하는 것들이 많다.
동일성이 없다에서 발전하여 그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따라 건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면최근에 만들어지는 다양한 건물들을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설계 초기부터 OO같은 건물이 아닌 그 속에서 발생할 일(사건 혹은 이벤트)들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들을 기록(프로그램)해 보고, 그 기록에 면적, 위치, 우선순위 등의 시간개념을 부여(다이어그램)해서 펼치거나 접거나 해서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렇게 해서 외부에서 보면 접어지거나 휘어지거나 한 건물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현대 건축에 조금은 이해의 정도가 높아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건축신문에 김석환씨가 현 문화재청장인 유홍준씨의 집(수졸당)에 방문하여 대담한 내용중에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을 했다.
현대식 집에 살면서도 동양의 정신을 담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주거가 꼭 한옥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인 환경이 어찌되든 그 속에 우리의 정신을 심으려고 한다면 그것도 우리의 것으로 수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림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