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내 친구가 곧잘 했던 말이다. 정확하게는 “국화꽃 향기”의 작가 김하인이 80년대 어두운 통곡의 시대를 향해 가끔씩 자조적으로 내질렀던 말이다. 나는 젊은 날에 인사동에 있는 어느 술집에서 이 말을 극적으로 만났다. 그렇다. 정말 ‘극적으로’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충분히 전율했었지 싶다. 이 말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내 정신은 이미 관능으로 활짝 열렸으므로. 나는 지금도 그러한 상황에 놓일 때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마음에 베껴 적고 나의 비망록에 등재하였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죽비소리가 되어 주었던, 외롭지만 푯대가 되어 주었던 감동의 속살. 그럴 때마다 내 존재의 삶은 작은 경련을 일으키며 구겨졌던 삶들을 아름다운 열꽃으로 피워냈다.
지금도 햇빛이 너무 뻑뻑하거나, 어쩌다 잠들지 못하고 비르적거릴 때면 문득 그때 그 말과 함께 그 친구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그리운 말, 차마 그리운 친구! 당시 현실에 안주하기를 부정하며 끊임없이 낯선 세계를 동경했던 나의 청색시대에 만났던 친구.
친구야! 비록 많은 것들이 세월과 함께 무너져갔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리움이 여전히 슬픈 아름다움처럼 남아 지금도 틈틈이 내 삶을 감시하고 있나니, 그대에게 행복 있을진저!
/유인실(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