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칼럼] 봄이여 오라 - 김경일

김경일(원불교중앙중도훈련원 교무)

방송에서 온난화 현상으로 인해 예년보다 보름 넘게 빨라진 이상한 봄소식을 연일 전하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하며 꽃샘추위도 있음직하련만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밀고 당기는 일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내 책상 한 구석에 석곡란이 소박한 꽃을 피웠네요. 정작 봄같은 봄을 실감하기는 그윽한 석곡 난향 때문입니다. 도량 뒤 안으로도 매화나무가 몽글몽글한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구요. 겨우내 기다리며 내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봄꽃도 같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봄이 점차 세상에 가득 채워지고 있어요. 만화방창(萬化方暢) 온통 봄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둔감한 체 살아갑니다. 혹시라도 산더미처럼 밀려있는 일속에 묻혀 봄을 잃어 버린지 오래지는 않으신지요? 세상일에 지쳐 겨울이니 봄이니 하는 말에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무뎌져버린 가슴을 탓하고 계시지는 않으세요? 세상과 조금은 거리를 두고 사는 제 처지에도 취업난이니 양극화니 하는 뉴스를 들으면 힘에 겨운 현실의 무게에 고단함이 느껴집니다. 무역규모 세계 10위에다가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이라는데 좀처럼 생활고는 줄어들지 않는 듯 합니다. 어쩜 2만불이니 3만불이니 하는 수치는 오아시스 같은 허무의 꿈일지도 모릅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한 것처럼 아무리 물욕(物慾)의 풍요와 편리가 거듭되어도 삶의 고달픔은 여전하지 않을까요? 고단하다고, 바쁘다고 재처 둔 여유를 되찾는 삶이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오직 한 가지 목표를 위해 정신없이 달려오는 동안 무심한 세월은 저만치 흘러갔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왜 사는지를 되묻게 됩니다. 사는 게 무엇인지......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과연 옳은 것일까? !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한번 창문을 활짝 열어 재껴 보시지요. 가슴 빵빵하게 숨도 한번 들이켜 보시구요. 그리고 밖으로 눈길을 좀 주세요. 저 깊은 땅속에 꿈틀거리는 봄의 진동도 느껴보시구요. 새 잎을 준비하기 위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힘찬 수액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는지요? 저 멀리 아지랑이가 보입니다. 남풍을 타고 훈훈한 바람이 온 몸에 느껴집니다. 머지않아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어나겠지요. 머지않아 보리밭은 푸르르고 창공에는 종달새가 지저귈 것입니다.

 

봄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봄은 모두에게 평등합니다. 봄이 전해주는 희망의 소식은 만인에게 똑같습니다. 봄의 새로움과 함께 마음의 봄은 희망으로부터 옵니다. 겨우내 우리를 짓눌렀던 묵은 잔설(殘雪)은 결국은 물러갈 것입니다. 어둠이 밝음 앞 에 적수가 되지 못하듯이 실의와 좌절은 희망 앞에 맞수가 되지 못합니다. 한겨울 음울한 기세에 가슴을 펴고 용기있게 씨뿌리는 농부의 마음같이 희망으로 가득 채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봄이 가득해도 묵은 가지에 움이 돋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에 희망을 담지 않으면 세월의 봄은 허망합니다. 봄기운을 받지 못하는 나무는 살수 없는 것처럼 마음에 희망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되 죽은 사람입니다. 원(願) 없는 이는 고목(古木)이요, 믿음이 없는 자는 죽은 나무며, 스스로 포기하는 자 또한 그렇습니다. 농부가 봄을 맞이하여 씨를 뿌리는 노력이 없다면 가을에 결실이 없는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것이 인과(因果)의 진리라, 어찌 농사에만 한한 일이겠습니까?

 

잠시 세상사도 재껴 놓고 시름도 내려놓고, 옛 선사들의 넉넉한 봄노래와 함께 내 인생의 봄도 가늠해 보시지요.

 

버드나무 봄 언덕에 석양(夕陽)이 비꼈는데 연못가로 풀꽃나무 쫑긋쫑긋 푸르구나 배고프면 뜯어 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니 바위 위에 저 목동은 잠이 절로 무르녹다.

 

산과 물이 모두가 봄의 소식이요 풀꽃 가득한 봄을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구나. 그 사이 소식을 묻지를 마라 한 생각 돌이킨 뜻 뛰어나 세상만사가 자재(自在)하다네.

 

자! 가슴을 활짝 열고 창문을 활짝 열고, 용기있게 외쳐 봅시다. 봄이여 오라. 어서 오라. 내 품안에 안기어 오라.

 

/김경일(원불교중앙중도훈련원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