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病魔)가 활개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에 맞서 싸우는 의사들도 녹록지않다. 첨단 의술과 풍부한 임상경험을 창과 방패삼아 질병정복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인류의 천적인 암을 몰아내려는 명의(名醫)들이 적지않다. 본보는 전라북도의사회(회장 양형식)와 공동으로 도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의사들을 만나보고, 이들을 통해 암치료의 현재와 내일을 가늠해본다.
'암을 정복하는 사람들'은 전라북도의사회의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됐으며, 해당 분야에서 임상 및 연구실적이 뛰어난 의사들이다.
정성후 교수(48)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차분하고 세심하다'는 인상이 새겨진다. 무언가에 대해 꼼꼼하고 자세한 설명을 잊지 않는다.
"의사의 의무는 환자에게 건강 의학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이를 통해 조기검진 및 조기치료가 가능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특히 대부분의 내원환자들이 여성인 만큼 한가지라도 관련 정보를 보태주려고 노력합니다”
정 교수는 도내는 물론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유방암 전문의다. 전북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93년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애나 의대에서 종양연수를, 94년에는 슬로완 케터링 암센터에서 유방암연수를 받았다.
당시만 해도 외과수술에서 유방암에 대한 연구나 인식이 부족했던 만큼, 관련 연구에 남들보다 한발앞서 뛰어든 것. 한국으로 돌아온 직후부터 '유방암의 선두주자'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96년 서울삼성병원에서 근무했고, 97년 전북대병원으로 모교로 자리를 옮긴이래 유방내분비외과 과장을 맡고 있다.
"당시 은사(황용 교수)의 권유로 유방암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죠. 유방암은 90년대 중반부터 환자수가 급증해 이제는 여성암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환자들을 돌보는 기회가 많아진 셈이죠”
지금까지 정 교수의 유방암 수술건수는 1000여건으로, 해마다 150∼200명의 수술환자를 돌보고 있다. 이는 전남북을 통틀어서도 최상위권. 수술후 성공률도 누구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특히 수술후 합병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감시 림프절 생검술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다.
"유방암은 대표적인 서구형 암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관련이 있다는 게 정설입니다. 에스트로겐의 노출이 많아질수록 유방암 발병률도 높아지는 것이죠. 초경이 빠르거나 폐경이 늦거나. 늦게 결혼했거나 임신경험이 없는 여성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 생활패턴이 서구화되면서 고단백·고지방의 식생활도 에스트로겐 분비를 촉진시키는 만큼 당과 지방의 과도한 섭취를 줄여야합니다”
정 교수는 "다행히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 생존률이 높은 편이고 특별한 예방책이 없는 만큼 조기발견과 조기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최근들어 부쩍 환자들의 처지나 마음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유방의 경우 수유라는 기능적인 측면외에도 여성의 아름다움이나 정체성에 관련된 만큼 유방암수술이후 환자의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 2003년 발족한 유방암환자 자조모임인 '핑크라이프'도 환자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정 교수에게 수술받은 환자 1000여명이 가입한 이 모임은 정기적으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고, 해마다 10월 세계유방의 달이 되면 정 교수와 함께 유방암 관련 인식 캠페인도 벌인다.
"유방암수술의 경우 과거에는 유방과 주변 조직을 완전히 도려내는 근치(根治) 수술이 기본이었지만, 최근들어 유방을 보존하려는 수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 예전에는 절제수술 환자에게는 성형수술을 통해 정신적인 후유증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정 교수는 "예전에 유방암 조기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수술을 권했는데 이를 거부하고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려다 3∼4년뒤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진 경우를 봤다”면서 "유방암은 적극적인 치료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