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고유어 동사 ‘고치다’에 대응하는 한자로 (건물을)수리(修理)하다, (옷을)수선(修繕)하다. (병을)치료(治療)하다, (잘못)을 교정(矯正)하다. (정책이나 진로를)수정(修正)하다. (세법)을 개정(改正)하다, (제도를) 개혁(改革)하다, (기록을) 경신(更新)하다, (구조를)개조(改造,改組)하다. (낡은 건축물을) 개수(改修)하다 같은 한자어를 들 수 있겠다. 구체적 문장들 속에서 이 한자어 동사들은 ‘고치다’로 대체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 ‘고치다’를 아무 한자어동사로나 대체할 수는 없다. 예컨대 우리는 ‘옷을 수선하다’, ‘병을 치료하다’, ‘잘못을 교정하다.’같은 표현을 ‘옷을 고치다.’, ‘병을 고치다.’, ‘잘못을 고치다.’로 말할 수 있지만 ‘병을 고치다.’를 ‘병을 개혁하다’로 바꾼다거나, ‘세법을 고치다.’를 ‘세법을 치료하다.’로, ‘잘못을 고치다.’를 ‘잘못을 수선하다.’로 바꿔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깐 고유어 ‘고치다.’는 그 대응 한자어들을 모두 의미적?통사적으로 포괄하고 있는 반면에 대응 한자어들은 ‘고치다’의 여러 영역 가운데 일부분씩을 떼어내어 자기 몫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많은 우리말에는 고유어 대 한자어가 일 대 다 대응하고 있어 한자어가 국어를 보다 섬세하고 명확하게 만들고 있지만 자칫 잘못 쓰면 엉뚱한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