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막내인 범수 스님의 저항으로 하관식을 할 수 가 없었습니다. 우리 칠남매도 일꾼들도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하얀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면사무소 방위 병을 마치고 불국사로 갔을 때 그가 부모를 잃은 상실감을 체우기 위한 현실 도피겠지 생각했었습니다. 형이 있으니까 다른 형제들 책임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나의 의무를 방기했습니다.
4년제 승가대학을 마치고 봉은사, 국민대학 뒤 어느 산사의 주지, 이천 영월암 주지로 있다는 것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 해인사에서 개혁파 스님들이 시국 선언을 했을 때 화면을 통한 뉴스 속에서 스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님이 저 세상으로 가신지 15년이 지난 뒤 나는 하안거 중인 스님을 지리산 백장암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스님의 가느다란 몸매에선 더덕 향기가 났습니다. 눈은 호수처럼 맑았습니다. 지리산을 내려오며 속가의 형으로서 단 한번도 도움을 주지 못한데 대하여 가슴이 아팠습니다.
북인도 리스케시에서 일년 반의 선과 요가를 마치고 다시 1년 반 정도 수행하기 위해 남인도 마이소르에 도착했다는 편지를 며칠전 받았습니다.
이번 설에 부모님 성묘에서 스님의 안부를 무어라 아뢰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탐욕스러울 만큼 선과 수양에 정진하는 당신의 생을 무어라고 이야기 할까요. 법수스님!
/최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