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속세를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사는 것을 꿈꾸어보는 적이 종종 있다. 번잡하고 누추한 삶에 지친 어느 날, ‘쑥과 마늘’만 먹고 살지언정 그만 홀연히 떠나고 싶은 충동은 우리 현대인들에게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1845년,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콩코드라는 곳에 살고 있던 28살의 청년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우리가 가족이 딸렸다는 이유로, 혹은 모아둔 돈이 없다는 핑계로 좀처럼 실현시키지 못하는 이런 꿈을 용감무쌍하게 실행에 옮긴다. 그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제법 번창한 지역인 콩코드의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월든(Walden)’이라는 호숫가에 손수 통나무집을 짓고 홀로 2년 남짓 생활한다. 「월든」은 이 숲속에서의 독신생활에 대한 기록이다. 무엇을 어떻게 키워서 먹었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으며, 주변의 자연은 어떻게 변했었고,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던가 등등...
그런데 소로우의 ‘은둔생활’--소로우 자신은 이 말을 싫어했다--은 흔히 우리가 꿈꾸는 ‘속세로부터의 탈출’과는 다소 다른 성격을 띤 실험이었다. 그는 19세기 중엽, 인디언을 몰살시키고 멕시코의 거대한 땅 일부를 단돈 천 달러에 빼앗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시민으로부터 인두세를 거두는 등, 이미 제국주의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던 당대 미국인들(정치가들)의 행태에 격렬한 분노를 느낀 나머지, 인간은 굳이 탐욕을 부리지 않아도 최소한의 의식주와 그것을 얻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만으로도 얼마든지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을 동료시민들에게 증명해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연을 깊이 사랑하고, 박물학자에 버금가는 동식물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겸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 철학은 물론, 당대의 지식인으로서는--그는 하버드 출신이다--매우 드문 일일 터인데 인디언의 문화와 사유방식에 대한 깊은 이해뿐만 아니라 인도철학과 중국 철학에조차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월든」은 자연에 대한 탁월한 시적 기록인 동시에 문장 하나하나, 단락 하나하나가 심오한 철학적 사색을 담고 있는, 그 자체로 하나의 보석 같은 책이다.
이 짧은 지면에서 <월든」의 아름다움에 대해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긴 하나,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단락 중 하나를 그대로 옮기면서 그 안타까움을 대신하려고 한다.< p>월든」의>
“나는 먼저 1피트 깊이의 눈을 치운 다음 다시 1피트 두께의 얼음을 깨서 발아래 호수의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며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것 같은 부드러운 광선이 사방에 퍼져 있으며, 바닥에는 여름이나 마찬가지로 밝은 모래가 깔려 있다. 호박색의 저녁노을이 질 때와 같은 영원한 물결 없는 고요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다. 그 고요는 이곳에 사는 거주자들의 침착하고 평온한 기질에도 상응하는 것이리라.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도 있다.”(「월든」중 ‘겨울의 호수’ 편, 강승영 역, 이레출판사, 2005)
/김영혜(우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