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금 또다른 삶의 전환기에 다다랐다. 무엇보다도 우리 정치의 위기는 심각하다. 정치 집단들은 국민들의 희망을 버려둔 채 자기들의 이익에만 급급하는 작은 소수이익집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들의 사회적 가치를 전면 보이콧하는 느낌이 강한 저출산과 심각한 대책이 요구되는 고령화 사회는 우리 사회 시스템과 가치관의 일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극치를 치달리는 국토의 유린과 파괴는 거의 범죄 수준에 가깝다. 국토 개발을 향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무책임한 반 지방자치적이고 반 환경적인 모든 각종 국토 개발정책들을 중단하거나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오죽하면 우리나라를 토건 국가라고 하고 지방자치를 토건 자치라고 하겠는가.
사람들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화에 '어느 정도'라는 말은 없다. 우리 사회곳곳에는 지금도 비민주적이고 반민주적인 낡은 구태의 벽을 친 집단들이 널려 있다. 우리들은 보다 더 민주화된 사회, 인간 중심, 자연친화적인 삶의 문화와 지식기반 중심의 새로운 정치, 문화, 경제, 교육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배고픔이 약속된 땅은 무서운 땅이다. 정치든 경제든 문화현상이든, 문제는 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야만적인 경제적 강탈과 폭력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 곳곳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빚어지는 어두운 그늘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나 세계의 불행은 국가나 세계라는 허구의 세계에 그 불행이 닥치는 게 아니라 늘 '개인'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우린 명심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과 사회적 가치의 혼란 속에서 우리가 새삼 느낀 것은 작은 물질에 대한 소중함이며 우리들이 공동체적인 생활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다. 하찮게 생각했던 나무 한 그루, 물 한 방울, 전기 한등, 한 끼 밥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 말도 이제 나는 귀가 아프다. 나는 늘 그런 삶의 가치를 우리들의 전통적인 작은 마을에서 찾는다. 거긴 사람들이 살았다. 사람중심, 자연 중심, 공동체적인 생활의 유대, 경오가 반듯한 예의, 같이 먹고 같이 놀고 일하면서 살았던 아름다운 풍경이 거긴 있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단 숨에 무엇인가 끝장을 보려는 성급함과 조급함과 거대함과 화려함을 꿈꾸며 산다. 끝내는 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에 시달리며 무엇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게 달린다. 경제만 해결 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데, 정말 지금의 경제적인 어려움만 극복하면 이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영원히 사라지는지. 아무도 선뜻 시원한 답이 없이 우리들은 무엇인가를 쫓고 무엇인가에 쫓기며 산다. 지금 우리를 쫒고 있는 것은 그래서 귀신이다. 귀신은 안보이고 무섭다.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은 이런 우리들에게 아주 편안한 인생의 의미를 주는 책이다. 단숨에 읽을 짧은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그 어떤 장편소설 보다도 오늘날 인류의 지속발전 가능한 생존과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해준다. 짧은 이 책의 구절들 모두 내게 희망의 울림을 주고 있지만 이 책의 첫 장에 나오는 구절은 언제 읽어도 내게 감동 적이다. 여기 그 구절을 옮긴다.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여러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다.'
이 책은 작지만 인류를 다 덮을만한 희망을 주는 나무와 숲 같은 책이다. 나무 한그루를 가꾸듯 세상을 정성들여 가꾸어갈 새 봄이다. 우리들의 삶의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을 때인 것이다.
/김용택 시인(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본보 서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