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탄원서

잘 산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운 세상

전라도 나주목 도림면에 살던 정진현이 요호부민으로 선발된 것을 취소해 달라면서 제출한 탄원서.(전북대박물관 소장 고문서 04975) (desk@jjan.kr)

어느 시대나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축복받는 일이며 그래서 남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사는 일이다. 없으면서도 잘 사는 것처럼 큰 소리를 치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조선후기에는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백성들이 혹시라도 잘 산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전전긍긍하였다. 잘 산다는 말을 듣는 것을 마치 낙인 찍히는 것과 같이 여겨서 무조건 피하고 싶어했다.

 

조선후기에 전라도 나주목 도림면에 살던 정진현(鄭震鉉)이 제출했던 다음과 같은 탄원서를 살펴보면 이러한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엎드려 살펴보건대 지금 한 고을의 요호부민(饒戶富民)을 선발하는 일은 허실(虛實)이 뒤섞여 있어서 진위를 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선발한 자료에 의거하여 모두 (돈을) 내도록 한다면 어찌 잘못 선발된 억울함이 없겠습니까? 저의 생활이 만일 잘 사는 사람의 그것과 같다면 열이면 열사람이 다 눈으로 지목하고 손으로 가리킬 것이니 어찌 거짓으로 가난한 채 하겠습니까. 대저 공론이 있는 곳에서는 여러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겨우 땅 10마지기에서 나오는 곡식에 의존하여 사는 저를 요호부민으로 선발한다면 저는 지난 해 이앙(移秧)하지 못한 채 묶혀 두었던 논을 팔아 납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주님께서는 지금 (저의 사정을) 살펴보신 후 사실 여부를 조사할 색리(色吏)를 특별히 파견, 허실을 자세히 파악하셔서 (제가) 억울하게 (요호부민으로) 선발되지 않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요호부민'이란 부호(富戶), 곧 부자라는 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자 조정에서는 부호들에게 공명첩(空名帖)을 팔아 재정을 마련하거나 혹은 그들로부터 갖가지 명목을 이유로 의연금 등을 거두어 들여 경제적인 어려움을 타개하려고 하였다. 또 조선후기에는 연이어 흉년이 들자 아예 각 고을별로 부호를 선정하여 두었다가 필요한 때마다 이들에게 억지로 공명첩을 팔거나 쌀이나 돈을 내도록 강요하였다.

 

탄원서를 제출한 정진현은 비록 신분이 양반이었으나 겨우 10마지기의 토지를 근근이 갈어 먹고 사는 처지였다. 따라서 부호로서 선정될 수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부호로 선정이 되어 의연금을 냈어야 했다. 따라서 그가 의연금을 내려면 지난해 이앙하지 못한 논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령에게 탄원서를 제출하여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사실을 조사하여 선처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탄원서를 접수한 수령은 그의 사정을 자세히 읽어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곧바로 붓을 들어 "누구를 넣고 누구를 뺄 수 없으니 번거롭게 소송을 제기하지 말라”는 판결을 써주었다.

 

이와 같이 조선후기의 요호부민들은 다른 백성들에 비해 살림살이가 조금 넉넉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수령이나 색리(色吏)들로부터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보다 못한 하층민들로부터도 억울한 일을 당하기 일쑤였다.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소작료를 몇 년 째 바치지 않고 마냥 버티는 경우가 매우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에 힘없고 빽 없으면서 잘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정진현이 요호부민으로 선발된 것을 취소해 달라고 탄원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