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광진, 명진, 정진 3형제를 데리고 어머니가 구암리 명당마을에 있는 외할머니 택으로 피난 왔었지. 너는 뽀얀 살결에 둥글넓적한 얼굴로 귀공자 티가 났었다.
익산역 기관고가 폭격 당하던 그 해 여름 너는 바람이 시원한 초등학교 뒤 켠 회랑으로 자주 놀러왔었는데, 그 때 두 손을 모아 뻐꾸기 소리를 내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너는 서울로 올라갔고 그 후 “뻐꾹, 뻐꾹, 뻐뻑꾹, 뻑꾹” 손동작으로 뻐꾸기 소리를 흉내 낼 때마다 너에 대한 그리움이 더하였다.
당시 나는 아버지가 교감선생님, 어머니가 평교사로 봉직하였기에 너희들이 부러워 했었지. 6학년 때 너하고 찍었던 작은 사진 속의 네 모습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지 보고 싶다, 명진아.
봄바람에 띄우는 이 엽신이 너에게 전해져서 나에게 꽃소식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정순량(시조시인·우석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