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엽서한장] 상주땅 낯선 산골 아낙이 된 너의 선택은 행복했다

김문진(시인)

난숙아.

 

냉기로 굳은 땅에 따뜻한 비가 내린다.

 

생명을 키우는 바람이 들녘을 휘감고 빗줄기를 흔들어 봄을 재촉하는구나. 가슴을 할퀴며 품으로 파고드는 봄 바람이 싱그럽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 언제였던가. 막연한 그리움에 가슴 절절 외로울때 보은에서 상주가는 길을 나그네 되어 갔었지. 그때가 청포도가 익는다는 팔월이었던가. 낯선 길 옆으로 늘어선 포도나무 사이에 햇볕이 촘촘히 스러져 농익은 향기가 내 발길을 붙잡아 세우더라. 고운 햇살 속에서 졸고 있는 노인, 깊은 주름살에 낀 땟국같은 세월의 무상, 보석같은 포도알을 입안 가득 물고 무엇인가 치받치는 목메임을 꿀꺽 삼킨 채 돌아왔던 그 산골에 네가 숨쉬고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몇 번의 포도가 익은 뒤에사 알았구나. 기억의 뒤켠에서 서성이는 동안 너는 빈 들에서 낱알을 줍고 시어들을 모아 시밭을 가꾸고 있었음도 네 시집을 받고서야 알게되었지. 네 소식에 심장이 멎는줄 알았다. 도시의 편리함, 화려함, 다 접고 상주 낯선 산골 아낙이 된 너의 행복한 선택을 잘했노라 말해주고싶다. 난숙아, 보고싶다. 새순 수줍어 하기 전에 너를 만나러 길을 재촉해야겠다. 들꽃이 수다스러워지기전에…

 

/김문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