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구훈(Asperger's syndrom)을 앓는 주인공 벤의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보여준 책이다. ‘혼자만의 세계’를 즐기고, 특정 과목에 천재적인 능력을 보이며, 새로운 세계에 공포를 드러내는 그들만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 작가는 아스퍼거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는 일이 대단히 어렵지만, 그들의 ‘다른’ 세계를 인정하고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 하다. 자기가 태어난 달과 날짜를 서로 곱해 제곱해서 원주율로 나눈 값이 ‘로또’당첨 번호가 되는 황당한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다.
맘대로 아빠 맘대로 아들 / 오은영 글 / 국민서관 / 9000원
“아부지한테 직접 물어 본 적 있는겨?”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주인공 종기는 아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종기의 아빠는 의사다. 어느 날 병원을 그만 두고 솔전리로 내려가 옹기를 구으며 살겠다는 아빠의 느닷없는 발언에 종기는 아빠가 미워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마음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이해할 수가 없어서다. 늘 싸움을 거는 대주, 책만 읽는 수경이 등 나름의 아픔을 간직한 친구들을 이해하면서 비로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게 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는데.. ‘내가 아빠라면’ ‘내가 아들이라면’ 이라는 ‘라면 비법’을 통해 부모와 자녀와의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위한 눈높이 대화법도 배울 수 있게 한다.
정표 이야기 / 이정표, 김순규 글 / 파랑새 / 9800원
1월 14일. 정표는 하늘나라로 갔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 정표는 1년 9개월 소아암 투병 끝에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만드는 일기를 남긴 채 떠났다. 정표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병상에서 쓴 일기와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 김순규 씨의 글을 엮은 책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 친구들과의 그리움, 조금 덜 아픈 날의 기억 등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눈을 감기 3 일 전인 1월 11일 “이렇게 힘들게 이겨 내면 다시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신나고 즐겁게 보낼 날이 오리라 믿는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적었다. 기나긴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정표의 희망과 사랑의 기억을 어떻게 아로새길 것인지의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일곱 가지 밤 / 이옥 원작, 서정오 글 / 알마 출판사 / 9000원
‘임금이 뭐라 해도, 과거시험을 못 봐도 나는 쓴다!’란 글귀는 정조임금도 못 말렸다는 희대의 글쟁이 ‘삐딱이 문인’ 이옥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책의 저자 이옥은 유교경전에 바탕한 정통 문학을 거부한 당대의 ‘도발’적인 글꾼이었다. 익살맞은 소리를 잘 했다는 송귀뚜라미 이야기나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세상을 버린 처녀, 호랑이를 길들인 며느리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붓 가는 대로 술술 써내려갔다. 어린이들이 접할 수 없었던 한문으로 된 옛 이야기가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동화로 꾸며져 눈길을 끈다.
청계천 5840 / 주경희 글 / 세상의 모든 책 / 8500원
책 제목의 ‘5840’은 복원된 22 개다리를 잇는 총 길이가 5084 m. 청계천에 관한 숙제를 하던 주인공 한얼이가 컴퓨터 속 지하 세계로 빠져들면서 청계천 22개의 다리에 얽힌 역사를 새롭게 배워간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한얼이는 거머리와 지렁이가 우글대고 대마녀가 지배하는 청계천 아래 지하세계에서 ‘공주’라는 여자아이와 털보아저씨의 도움으로 22개 청계천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는데.. 동네 아이들이 팬티만 입고 물장구를 치며 놀던 어린 시절부터,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집으로 대변되는 고된 서민들의 삶까지 서울의 역사를 같이한 청계천의 이모저모가 재미있게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