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중도(中道)통합

만약 ‘중도통합’의 지적소유권을 허용다면 7선 국회의원을 지낸 소석(素石) 이철승(85)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독재 체제인 1976년, 소석이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된 뒤 주창한 정치철학이 '중도통합론'이었으니 꼭 30년전의 일이다.

 

소석은 남북 대치상황에서 국가의 안보와 자유는 대립적 개념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흑백논리가 이 나라의 헌정사를 후퇴시켰다고 보고 국내정치는 서로 경쟁하되, 외교 안보문제는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당시 선명성을 내세운 강력투쟁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그의 ‘중도통합론’은 독재정권과 야합하는 것으로 비쳐졌고, 사쿠라라는 비난을 샀다. 소석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낙선, 8선 고지를 넘지 못하고 사실상 정계 은퇴했다. (‘20세기 전북을 빛낸 50인’· 전북일보사 刊)

 

시류는 변하는가. 30년전 사쿠라라는 비난에 휩싸인 중도통합론이 정계개편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각광받는 정치이념이 되고 있다.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부쩍 늘고 있고 새 정치세력이나 신당이 추구하는 이념도 모두 중도를 주창하고 있다. 불변하는 정치이념은 없는 모양이다.

 

민주당은 ‘중도개혁 국민정당’이란 표현을 당 강령으로 채택했고 열린우리당에서 뛰쳐나온 세력은 아예 모임 명칭을 ‘중도개혁통합신당’으로 정했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 역시 표면에 내세운 탈당 이유가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가 아닌 '중도 통합'이었다. 한나라당 예비후보마저 중도를 주창하고 나서는 마당이다. 소석의 중도통합론을 공격했던 김대중(DJ) 전 대통령마저 '통합신당 추진모임' 의원들의 예방을 받고는 “중도통합의 기치는 매우 적절하고 옳다”고 평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대선을 9개월 남겨두고 있다. 모두 중도를 표방하고 있으니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껍데기 중도’도 있을 터이다. 중도를 외치는 정치인이라면 중용지도(中庸之道)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마음을 비우고 자기분수를 알아 무리수를 쓰지 않는 게 중용의 기본이다. 한켠에선 중도를 외치고 다른 한켠으론 욕심만 잔뜩 채우고 있으니 그게 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