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기 전 광부들은 어두운 갱도 안에서 일할 때 유난히 허약한 호흡기 조직을 가진 아름다운 카나리아 새를 들고 갔다. 막장의 공기 독성이 심해지면 이 조그마한 새는 노래를 멈추고 침묵을 지켰고, 이를 신호삼아 광부들은 위험을 알아차리고 피함으로써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 이 사회에서 카나리아가 내뿜고 있는 경고는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년 1만 명 이상이 자살하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최우수 성적표가 상징하는 생명 경시 풍조와 사회 구조의 절박함, 대통령까지 나서서 박물관으로 갈 유물이라던 국가보안법이 시퍼렇게 날뛰고 있는 법의 야만성, 미국민 뿐 아니라 전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이라크 침략 전쟁에 버젓이 공범으로 동참하여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국제 평화를 외치는 모순된 국가, 사회적 소수자 및 여성 차별, 청소년과 학교 폭력, 빈부 격차 심화에 따른 사회 양극화 문제 등이 그 경고다. 이 모든 경고음 중에서 지면상 한 가지 문제만 들여다보자.
참여정부 들어 빈곤층은 2배로 늘어나 20%가 되었고, 개인 파산 신청자는 12만 명을 넘었고, 취업을 못한 청년이 50만 명을 넘어서서 사회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암울한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돈 없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요원해지고 있는 현실이 오늘의 풍광이다.
그러는 가운데 이제 막판으로 치달은 한미FTA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찬반양론은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재생산해내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일부 정치인들은 반정부적인 외침을 드높이고 있다.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라 한미FTA가 과연 미래의 우리 국가와 사회에 어떤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극도로 위험한 국면에 다다르고 있다는 우려이다.
미국이 세계화 정책,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시하던 1980년대 이후부터 미국 내 빈부 격차는 급속하게 확대되었고, 고용 불안, 노동자의 삶의 질 악화 등이 이어지고 있는 일반화된 현실을 보면 자유와 평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증폭된다.
가진 자는 더욱 배부르고, 없는 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빈곤까지 세습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모델이 우리 국가가 나아갈 지고지순한 가치라 믿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고, 이제라도 정부는 국민의 뜻을 묻는 국민투표로 한미FTA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보일 때가 되지 않았는가.
국민주권주의가 헌법에 나와 있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면 이제 저 가여린 적색경보에 귀를 기울여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국가와 사회계약을 체결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가 아니었던가. 정부가 사회계약을 파기할 각오가 아니라면 말이다.
카나리아 적색경보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우리에게 선택을 재촉하고 있다.
/김희수(전북대교수·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