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은희경

소설을 쓰며 고독을 이겨내는 작가의 질문과 고민이 응축돼 있는 이야기들

“나는 아름답고 낯설고 허망한 소설을 좋아한다. 그러나 잘 쓰지는 못한다. 대개 내 소설은 질문과 고민을 포함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은희경의 신작이 나왔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창비). 제목부터가 아름답고도 낯설고 허망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2005년 「비밀과 거짓말」을 내며 은희경이 쓴 ‘작가의 말’을 꺼냈다. 그러고는 ‘이 말은 믿을 게 못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로 말하자면, 질문과 고민이 응축되어 있는 이야기인 채로 아름답고 낯설고 끝내 허망하기까지 하다.’고 평했다.

 

은희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소설 미학에 그는 ‘이 소설의 장르는 그래서 그냥 ‘은희경’이다’고 말한다. 아홉번째 책을 내는 작가에게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한 칭찬인가.

 

표제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끈다. 세상을 사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한번쯤은 느껴봤을 기분. 그러나 주인공은 남자다.

 

마른 사람이 울면 비련의 주인공이 되고, 뚱뚱한 사람이 울면 코믹이나 청승이 되어버리는 세상.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뚱뚱했던 아들은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지난해 황순원문학상 최종후보에까지 올랐던 이 작품은 「비밀과 거짓말」이나 「상속」에 나왔던 ‘가족’과 ‘아버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냉소’를 향하던 그의 소설이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고독’을 달고나온 것도 달라진 점이다. ‘고독의 발견’의 만년 고시생 K도, ‘의심을 찬양함’의 유진도 모두 고독하다.

 

몽상가 소녀 B의 상상 속 세계와 상상과는 너무 다른 현실이 교차하는 ‘날씨와 생활’은 오디오북으로도 나왔다. 성우들이 작품을 읽고 은희경이 육성으로 직접 해설을 했다.

 

“소설 한편을 쓰고 나면 이로써 또 한번 한국문학을 빛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텐데 다만 가까스로 한가지의 고독을 이겨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잠깐이나마 낙관적이 되는데, 그때 짓게되는 안도의 웃음이 바로 소설 쓰는 체력이 돼주는 것 같다.”

 

“소설은 혼자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는 은희경. 웃지 않으면 자칫 표정에 풍상이 엿보이는 나이.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일부러 큰 소리로 웃기로 결심했는데, 소설 속에서도 역시 그 여정이 조금쯤 보이는 듯하다고 한다.

 

참, ‘아름답고도 낯설고 허망한’ 책 제목은 시집을 뒤져 골랐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골라낸 문장 하나로부터 표제작의 제목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