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느리게 살아라

'슬로 라이프' 쓰지 신이치 지음·김향 옮김·디자인하우스

현재 우리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잘 산다는 선진국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며 대도시일수록 시간에 쫒기는 것이 당연한 일로 되어버렸다. ‘시간 은행에 시간을 맡기면 그것이 몇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오늘’을 허둥대며 살아가고 있다. 일에 짓눌려 꽃이나 나무, 가족이나 친구 돌아보는 것은 계속 ‘내일’로 미룬 채.

 

문제는 이렇게 내몰리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로 인해 정신과 영혼이 피폐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삶의 근거인 생태자연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나 ‘패스트푸드’ 등을 통해 시간을 정복해보겠다던 꿈은 이제 악몽이 되어 우리들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슬로 라이프’는 이런 인식에 근거하여 제안된 개념이다. 영어에 없는 말이지만 탄생하자마자 그 뜻과는 어울리지 않게 급속도로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 그만큼 ‘빠른 삶’의 후유증이 심각하고 그 대안 마련의 시급성에 대한 공감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다는 증거일터다.

 

책 『슬로 라이프』는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라 할 수 있는 ‘느리고 단순한 삶’이라는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안내서다. 물론 정해진 길이 강요되지는 않는다. 교조적 규칙 같은 것도 없다. 70여개에 달하는 핵심단어들을 중심으로 우리들 삶의 방식을 잠시 뒤돌아보게 해주고 있다. 속도와 효율성, 생산성만을 강조하는 주류적 가치나 사고에 대해 일종의 해체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무책임한 해체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소곤거리듯 말하면서도 개인적 기호 차원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다. 인간관계, 사회, 경제, 그리고 환경적 측면까지로 이어지는 보다 깊은 의미의 ‘느린 삶’ 개념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 책의 매력은 이처럼 거시적인 의미와 우리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이 함께 제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걷기, 놀기, 빈둥거리기 등을 통한 느림회복운동 참여를 독려하면서 이것을 지구온난화, 유전자 조작 등 우리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좀더 심각한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의 구상과 창조의 필요성까지, 그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서지정보를 갖추고 있어 독서와 사유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해당 핵심단어의 주제를 심도 있게 탐구할 수 있도록 관련 저서와 인터넷 정보를 ‘깊이 알기’를 통해 소개하고 있으며 비슷한 주제의 글들은 ‘이어 읽기’로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제와 관련된 ‘느림의 철학자들’을 소개함으로써 종합적인 이해는 물론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각인시켜주고 있다. ‘느림의 미학’이 주류에 끼지 못하는 자들의 ‘여우 신포도 타령’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 있는 것이다.

 

『슬로 이즈 뷰티풀』(빛무리) 등의 저술을 통해 ‘슬로 라이프’ 운동의 물결을 일으킨 저자 쓰지 신이치는 한국계 일본인으로 현대사회 병폐의 치유책을 ‘느림의 철학’에서 찾고 있는 문화인류학자이며 환경운동가다.

 

/이종민(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