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인류 최초의 주거공간은 ‘동굴’이라는 얘기가 된다. 동굴이라고 하면 우선 듣기에 몹시 낯설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열 달 동안을 어머니 뱃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가끔 세상사는 일에 지치고 힘들 때, 사람들은 동굴에 대한 아늑한 그리움을 본능적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요즘 중장년층들은 더하다. 모든 게 다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머리에는 하나둘 새치만 늘어 간다. 이제 밖에서는 여자들에게 밀리고, 집에 들어와도 맨송맨송하기는 마찬가지다.
갈수록 자녀들의 교육이 가정의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면서부터 엄마의 역할은 점차 강조되고 있지만, 고개 숙인 남자들은 이제 어디 하나라도 마음 놓고 쉴만한 곳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대부분의 중장년층들은 밖으로 나돌게 되고, 때로는 드라마나 컴퓨터게임에 몰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라톤이나 밤낚시, 바둑 등의 취미에 쉽게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질서정연한 듯 보이는, 이 사회조직에서 일탈해보고 싶은 것이다. 비록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풍조 탓에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정말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푹 파묻혀 쉬고 싶다.
그러나 막상 마음은 그렇게 먹어도 정작 쉴 곳은 없다. 아파트마다 경쟁적으로 고급스러운 침실을 만들고, 거기에 별도의 휴게공간이나 전용화장실까지 붙여놓긴 했지만, 한번 지친 몸과 마음은 쉽사리 풀어지지가 않는다.
그렇다고 옛날 그 어느 노래가사처럼 ‘우리 집에 제일 높은 곳, 조그만 다락방’이 따로 있을 리도 만무하고, 또 어린애들처럼 장롱 속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모두 다 우리 현대건축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모두들 가사노동에서 해방을 목표로 기능과 동선을 분리하고, 또 하려하게 치장을 하면서 마치 유행처럼 외관을 바꿔가고 있지만, 정작 아프고 지친 사람들이 마음 놓고 편히 쉴만한 공간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사는 일이 이렇게 점점 더 복잡다단해질수록, 옛날 어머니의 그 품속처럼 ‘편안한 공간’, 동굴 속처럼 ‘아늑한 공간’을 더욱 더 그리워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