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학력위주 사회의 맹점 - 이강녕

이강녕(前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

필자는 이번 버지니아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필자는 현직에 있던 시절 이런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기능기술자를 양성하는 공업고등학교 졸업생에 대한 추수연구를 하는 과정에서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공고를 졸업한 한 회사의 기능공이 신입한 상사를 맞았다. 그 사람은 공고를 다닐 때 자기보다는 몇 수 아래의 친구였다. 자기는 이 공장의 기능기술자로 오는 사이 그는 대학을 갔고 그리고 그 대학을 졸업하고 이번에 이 회사로 첫 부임한 것이다. 반갑게 맞이한 이 기능기술자는 새로 온 친구의 상황을 파악하고 큰 좌절에 빠진다.

 

새로 온 그 친구와 거의 같은 일을 하는데 자기와는 엄청나게 보수를 더 받을 뿐 만 아니라 자기는 승진해 보았자 승진에 한계가 있는데 반하여 그 친구는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유 하나 만으로 승진에 한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큰 좌절감을 갖는다. 그는 드디어 다음해에 그 회사를 그만 두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필자는 이 사례를 보고 우리나라 교육의 잉여교육현상을 지적한바 있다. 이러한 불필요한 잉여교육현상은 능력위주 사회가 아닌 학력위주 사회의 맹점임을 지적한바 있다. 이러한 학력위주사회의 맹점은 해외 유학하면 만사 쾌유라는 또 다른 교육의 비능률성을 목격하게 된다.

 

필자가 캐나다 록키를 넘어 벤쿠우버 공항에서 한국으로 오는 항공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대기실 부근에는 고등학교 학생인 듯한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캐나다에 유학 온 학생들이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고국으로 가기 위하여 이 공항에 모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기다리며 행동하는 모습들이 정말 꼴불견이었다. 자연 스러히 대화하는 모습은 찾기 힘든데 반하여 남녀 쌍쌍이 부등켜안고 잠에 취해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너무 진한 입맞춤 현상까지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그게 우리나라 학생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것보다는 그러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찰이 시작되자 그들의 말하는 소리를 듣고 필자는 정말 실망 아닌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들은 한국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들은 이국에 유학 보내 놓고 공부 잘하고 훌륭한 사람 되어오기를 기다리며 한국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식공부를 위한다는 이름아래 얼마나 많은 기러기 아빠 엄마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런 사유들이 얼마나 또 많은 가정파탄을 가져오고 있는가를 살펴볼 일이다. 더 말하면 선량한 가정에 욕될까 무서워 줄이지만 지나친 자녀 교육열이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지 않는지 염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번 버지니아 사태를 이런 맥락으로 이 가정을 욕되게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미국으로 이민을 간 가정 같으면 우리나라에서는 중 상 류 급은 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 가 세탁업을 하면서 자식을 명문인 버지니아에 진학시키고 이를 자랑했었다는 보도에 접하고 보면 학력위주의 가치관이 빚은 또 하나의 비극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을 되돌아 볼 때다. 학부모들도 특별하게 가르쳐 특별한 자식을 만들려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별하게 가르치려다가 실패하면 특별하게 문제아가 되기 쉽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보통학생을 뽑아 특별하게 가르쳐 우수한 인재를 기를 생각은 아니하고 우수학생만 뽑아 우수 대학의 이름만 유지하려는 우리나라 소위 명문대학에 경고하고 싶다. 교육은 인간성 위주에 교육의 중점을 두고 나머지는 그 일부분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강녕(前 전라북도 교육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