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혼정신성(昏定晨省)

입주 보증금 일 억원에 후원금 천 만원 필요하다. 그리고 당연히 월 생활비로 74만원을 내야 한다. 무심코 들으면 무슨 전세 이야기인가 하겠지만 사실은 실버타운에 입주할 수 있는 사례 하나를 나열해 본 것이다. 은퇴 후에 일 억 갖기가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그 일 억 가진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구심이 든다. 그나마 천만원 후원금은 그냥 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월 생활비 74만원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들도 많겠지만 그럴 수 있는 이들은 과연 전체 노인 인구 중에서 얼마나 될지 모른다.

 

이런 염려는 버젓한 직장에서 일했던 분들보다 농촌과 어촌 등지에서 생업에 종사했단 분들에게 더 와 닿는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농가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비중이 30%를 넘어 초고령을 뛰어넘어 ‘초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고 한다. 어촌에서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돌파했으니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셈이다.

 

실버타운에 모두 비싼 것은 아니다. 정부의 복지정책 덕분에 지자체와 기업 등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입주해서 살 수 있는 실버타운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건이 좋은 실버타운은 당연히 신청자가 밀려 있어서 차례를 한참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이러한 수요를 대비해서 노인만을 위한 주거와 교통, 보건의료 서비스, 일자리 등을 한 자리에서 제공하는 대규모 ‘고령친화모델지역(고령타운)’을 2010년부터 전국에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실버타운은 국내에서만 조성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중국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지에는 은퇴한 한국인 부부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어서 관련 산업이 성업 중이다. 특히 필리핀으로 가서 노후 생활을 즐기는 한국인은 모두 천 백여 명이나 되어서 이제 중국과 대만을 제치고 최고의 이민지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노년의 부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내리 사랑이라고 흔히들 쉽게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은퇴한 부모님들에게 자식만한 위안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아침 저녁 부모님의 자리를 봐 드리는 효심을 두고 ‘혼정신성(昏定晨省)’이라 했다. 얼마 되지 않은 용돈으로 효심을 대신하는 것보다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효심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