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전북의 6월항쟁
6월 10일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가 열리는 것에 맞추어 ‘박종철 군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전국 동시다발로 개최되었다. 전주 이리 군산 등 도내 3개 지역에서는 학생과 시민 등 수천여 명이 참석,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전주지역에서는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경찰 차량과 오토바이가 불타고 고사·서노송동 파출소와 KBS 방송국이 돌 세례를 받았다. 이리에서도 경찰 오토바이가 불타고 북일 파출소가 습격을 받았다. 이리 시위대는 수출자유지역공단을 돌며 노동관련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군산은 이날 국본군산지부 결성식을 갖고 시청, KBS를 돌며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했다. 정부 발표는 ‘국민대회 무산’으로 나왔지만, 이날 분출된 시민의 열기로 볼 때 정국은 화산 폭발 직전의 형국이었다.
전국적으로 시위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18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농성이 항쟁의 불꽃을 유지하고 있었다. 18일 전국 동시다발로 열린 ‘최루탄 추방 궐기대회’를 기점으로 격렬한 시위가 재개되었다.
번져가는 들불
6.10대회 이후 소강상태에 있던 전주는 19일 전북대생 500여명이 가두에서 시위를 시작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이후 26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가두시위가 진행됐다. 예상외로 시위가 확산되어 가자 전북의 민주화운동 관계자들은 비상대책위를 꾸리게 된다. 국본 전북본부와 전민협을 근간으로 막 출옥한 청년활동가들이 결합하여 꾸려진 비대위는 매일 전주 가톨릭센타에서 회합을 갖고 시위투쟁을 기획하는 지도부 역할을 수행한다. 군산과 이리는 국본조직과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매일의 시위투쟁이 진행되었다. 매일 자정을 넘기는 가두시위에 수천 명의 시민과 학생이 참여하였고 시민들의 열광적인 참여에 힘입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전북본부에서는 6월 22일부터 28일을 민주화실천기간으로 선포하고 매일 오후 6시 팔달로(각 시군은 시내 중심지)에 모일 것을 공지했다.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의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경찰의 저지 병력에도 한계가 오자 경찰은 시위 진압보다는 주요 관공서와 민정당사 등에 대한 주요 거점 방어로 후퇴했다.
22일 전주시위는 매우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5시간을 쉬지 않고 전개된 치열한 공방으로 코아백화점 앞에 설치되어 있던 KBS 이동스튜디오와 고사동 파출소가 전소되고 태평동·금암동·진북동·중노송 2동·덕진동 파출소가 전소 내지 반소되는 등 시위대가 지나가는 주요 길목에 있던 파출소는 모두 화염병과 투석으로 피해를 입었다. KBS 및 전주 MBC와 교육청에도 시위대가 진격,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는 ‘민주시민 탄압하는 안기부 폐쇄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중앙동 안전기획부 대공상담소에 돌을 던지고 상담소 간판을 떼어냈다. 대공상담소는 28일까지 폐쇄됐다.
매일 매일 집회 현장에서는 시국토론회가 열렸다. 따로 토론회를 준비하고 말 것이 없었다. 시민들이 한 사람씩 자발적으로 연단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군부독재 타도를 호소하는 열정적인 연설을 이어갔던 것이다. 사거리 한복판을 원형으로 둘러싼 시위대는 풍물잔치, 전두환, 노태우 화형식과 농민들이 참여한 시민강연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열기를 북돋았다.
23일 밤, 전주에서는 4천여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민주부활을 기원하는 평화대행진> 을 벌였다. 전주교구 박정일 주교 신부를 포함한 수십 명의 신부와 수녀들이 사제복을 입고 행진하고,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이 촛불을 손에 그러쥐고 행진대열에 참여했다. 오후 10시가 넘어 평화대행진 대열이 관통로 사거리 시위대와 합류하면서, 시민들의 수는 4만여 명에 이르러 6차선 도로 1km를 가득 메웠다. 시위대 행렬에는 예비군복을 입은 복학생, 의사 가운을 입은 의대생, 고교생, 각자 고유 복장을 입은 종교인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시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참여했다. 민주부활을>
25일 학생시위대의 주요 동력이었던 대학생들은 ‘전학협’을 결성하고 성명과 결의문을 통해, 모든 집회와 시위는 비폭력·평화적으로 전개하고 방화·기물파괴·과격행동을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조직된 학생시위대의 이같은 방침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열기는 거세기만 했다. 25일 이리에서 3∼4백 명씩 대열을 형성한 시민·학생들은 새벽 3시까지 시내 곳곳을 돌며 민정당사·시청·이리세무서·노동부 이리지방사무소·전신전화국에 돌과 화염병을 던져 일부를 불태웠다. 역전·마동·평화동파출소은 화염병에 전소됐다.
민주헌법쟁취 도민평화대행진이 열린 26일은 전주 6월항쟁의 절정이었다. 6월 26일 시위에는 전주인구 40만중 10만이 참여했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시내 곳곳이 군중들로 들어찼다.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로 경찰력은 무력화됐고 대중 집회장에서는 시국토론회, 마당극, 풍물놀이, 군부독재장례식 등이 열려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이날 밤 서중 앞 로타리에서 열린 ‘군부독재장례식’후 시위 대열은 세 방향으로 나뉘어 횃불을 선두로 행진에 들어갔다. 이때 집회 종료를 기다리고 있던 경찰이 엄청난 분량의 최루탄을 한꺼번에 난사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거리를 메운 최루탄 때문에 흩어진 시위대는 새벽 1시까지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리에서도 26일 20만 이리 시민 중 최고 4만여 명의 시민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평화대행진이 이뤄졌다. 군산에서도 시민 17만명 중 최고 2만여명이 시위에 가담했다. 봇물이 터진 셈이었다. 군산 시위대는 미군 전용상가가 몰려있는 영화동을 지나면서 ‘독재정권 지원하는 미국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영화동에 나와 있던 미군들은 황급히 부대로 철수했고 이날 저녁부터 군산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에게는 외출금지령이 내려졌다.
/이재규 기획위원
도움주신분
-김영기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사무처장
-나인경 전북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정훈 (주)평화교역 대표(전 전북대 총학생회장)
-원도연 전발연 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