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에 미쳐 아흔아홉가지를 잊고 사는 사람들. 옛 사람들을 그들을 가리켜 ‘벽(癖)’과 ‘치(痴)’라고 불렀다.
조선을 뒤덮었던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의 시선으로, 자신의 시대를 만들어간 10명의 사람들. 18세기 ‘벽’과 ‘치’가 21세기에 들어 ‘프로페셔널’이란 이름을 얻게됐다.
「조선의 프로페셔널」(휴머니스트)을 엮은 고전학자 안대회 명지대 교수. 그는 “그들은 목숨과도 바꿀만한 매력적인 자기의 분야를 개척하여 최고가 되기 위해 조건 없이 한 가지 일에 도전한 사람들”이라며 “그래서 케케묵은 문헌의 검은 글자들 사이에서 그들을 불러 깨우는 작업이 내내 즐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 보기에는 정말 진정한 프로라고 말하기에 부족하고, 그들의 의식도 낭만적이고 승부욕도 약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진정성은 오히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프로 정신이 금전으로 바로 계산되지만 당시에는 금전보다는 역사와의 승부였습니다.”
안교수는 지금까지 역사가 주목하지 않는 분야의 프로페셔널을 찾았다. 바둑기사, 여행가, 책장수 등 역사교과서는 커녕 자유롭게 서술한 역사책에도 한 줄 소개되지 않았던 분야와 사람들이다.
무주에서 태어난 최북. 그는 괴팍한 성격과 행동으로 기인 소리를 들었지만 천재화가였다. 원하지 않는 그림은 그리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제 눈 한 쪽을 찔러 멀게 했으며, 늙어서도 안경알 하나만을 걸쳤다. 명나라 화가 서위가 송곳으로 제 귀를 뚫고 네덜란드 화가 고흐가 제 손으로 귀를 자른 광기를 최북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천하 모든 땅을 내 발로 밟으리라”고 했던 여행가 정란, 승부의 외나무다리를 걸으며 반상의 제왕에 오른 바둑기사 정운창, ‘조선의 다빈치’ 조각가 정철조, 검무로 18세기를 빛낸 무용가 운심, “책이 있는 한 책을 팔러 다니겠다”고 했던 조선 최고의 출판 마케터 책장수 조신선, 번잡한 세상을 등지고 ‘꽃나라’를 세운 원예가 유박, “그래, 나는 종놈이다”라고 외친 천민 시인 이단전, 나는 학을 내려앉게 한 현악기의 거장 음악가 김성기, 자명종 발명에 삶을 던지 과학기술자 최천약. 안교수는 “우연의 일치인지 이들 인물들 가운데 지배집단에 속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힘든 길을 걸으면서 이들이 자신을 다진 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과 자존심,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 그리고 오기였다”고 말했다.
조선 제일의 국수가 되기 위해 10년을 오로지 바둑만을 두었던 정운창, 남의 집 종인 이단전은 신분에 걸맞지 않게 시인이 되고자 밤새우기를 10년간이나 했고, 정철조는 서양서라면 무조건 모으기 위해 당파가 다른 정승 판서의 집이라도 반드시 선을 넣어 책을 빼냈다. 자기가 선택한 한가지에 몰두함으로써 이들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페셔널, 마니아, 그리고 폐인까지. 한 가지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했던 그들을 역사는 훗날이라도 꼭 기억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