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에게 띄우는 엽서한장] 울새 한쌍의 신혼 소리도 귀가 했는데 잠잠해졌네

곽진구(시인·서진여고 교사)

노형, 내가 차에서 내려 맨 먼저 본 게 무엇인지 아시는가.

 

산 그림자 위로 실려오는 잘 익은 저녁 노을이 아니라 차에서 발을 내리자마자 갑자기 익어 넘치는 고요 한 그루가 열렬히 나를 맞이하는 것이었다네.

 

울새 한 쌍이 가끔씩 신혼의 소리를 내기도 하였지만 어둠이 내리고부턴 그들마저 귀가를 했는지 잠잠해졌고 나는 이곳에 당분한 나만의 캠프를 치기로 했다네.

 

스쳐지나가고야 말 것은 결국 스쳐지나가고 말겠지만 늘 그러하듯 버리는 것, 이것은 철학이고 결단이며 새로움이고 가치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았네.

 

보이지 않는 땅속 물에 놀라 화들짝 잎을 내는 나무처럼 어두운 하늘에 놀라 장대비를 쏟아내는 구름도 우리의 생 속에 참 많았음을 알았네.

 

산 속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지만 이렇게 생에 놀라 생에 주저 앉아버린 자신을 만나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라네. 때마침 저 한 그루의 고요속에 나를 맡기고 한 밤은 족히 병을 칭하였더니 그 고요도 이 때를 노려 욕심을 내다버리고 눈물을 내다버리고 이름을 내다버리고 있었다네.

 

나는 게으름을 피우며 그 놈 행세를 하기로 했다네.

 

또 편지함세.

 

/곽진구(시인·서진여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