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섣달 그믐날 저녁 12시가 되면 1시간 가량 여기 저기서 폭죽터지는 소리가 진동한다. 모두 집 밖으로 나와 직접 폭죽을 터뜨리거나 폭죽 터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리는 중국 최대의 명절인 1주일간의 설연휴를 알리는 축포인 셈이다. 하지만 이 놀이는 위험성이 커 해마다 부상자만 1천명 안팎이 나와 정부당국이 골치를 앓는다고 한다. 폭죽놀이는 당초 악귀를 쫒는데서 유래했다. 그래서 ‘폭죽소리에 묵은 해가 걷힌다(爆竹一聲除舊)’는 말이 생겨났다.
일본에서는 16세기 말부터 폭죽이 유락물(遊樂物)로 발달하여 전국적인 경진대회가 열린다. 유명한 불꽃축제가 한둘이 아니고, 대(代)를 잇는 폭죽제조의 명문이 생겨나 오늘날 일본의 폭죽은 세계적인 상품이 되었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에서 발달한 폭죽은 화약의 발명과 함께 비약적으로 발전, 13세기말에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전해졌다. 15세기경에는 유럽 전역에 퍼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화려하게 밤을 수놓는 폭죽놀이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어지간한 축제에는 약방의 감초격으로 낀다.
그러면 조선시대에도 이런 불꽃놀이가 있었을까? 경북 안동 화회(河回)마을에서 행해지는 선유줄불놀이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낙동강이 ㄹ자 모양으로 감싸고 흐르는 이 마을에서는 음력 7월 보름께 강가에서 줄불놀이 뱃놀이 달걀놀이 낙화놀이가 벌어진다. 이어 선상시회(船上詩會)도 열린다. 줄불은 뽕나무 숯을 갈아서 만든 탄가루에 소금을 섞어 만들고, 달걀불은 달걀껍질의 일부를 잘라내고 그 속에 피마자 기름을 담아 심지를 달고 불을 켠다. 줄불놀이는 소금이 타오를 때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내고 달걀불은 강위를 떠다니면서 다양한 문양을 아로 새긴다. 이 놀이는 낙화놀이로 절정을 이루는데 젊은이 3-4명이 부용대(芙蓉臺) 절벽 위에 올라 솔가지 다발에 불을 붙여서 ‘낙화야’하는 소리와 함께 강으로 내던진다.
또 경남 함안군의 ‘이수정 낙화놀이’, 강원도 화천군 머슴명절놀이, 경기도 여주 ‘가남 낙화놀이’ 등도 재현되고 있다.
도내에서도 이러한 낙화놀이가 31일 복원되었다. (사)민족문화연구소가 무주군 안성면 두문마을에서 일제 강점기때 끊어진 이 놀이를 재현한 것이다. 학술세미나와 함께 열려 의미를 더할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