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란 배우는 영화에서 고통을 바르고 나온 것 같았어요.”
전도연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다음날, 한 중앙지에는 영화 ‘밀양’의 원작자인 이청준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얼마나 실감나게 소설 속의 여자를 연기할까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는 극찬이었다.
문득 원작이 궁금해 졌다. 한국 문단의 거목 이청준씨의 중편소설 「밀양-벌레 이야기」(열림원).
영화와 원작의 차이는 크다. 소설에서 여자는 자살을 택하지만 영화 속의 여자는 계속 살아간다.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운 것일까.
「밀양-벌레 이야기」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쓴 것이다. 어린이 유괴살해 사건의 범인이 형 집행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운 마음으로 떠나가며, 그 자비가 희생자와 가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빌겠다’는 요지였다.
이청준은 작가 서문에서 “그것은 내게 그 참혹한 사건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요. 내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싫어서보다는 이미 내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게 된 때문이었어요. 그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고 있었어요. 나는 새삼스레 그를 용서할 수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신앙심으로 아이를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로 한 그녀. 하지만 이미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던 범인을 보며 그녀가 느낀 배신감은 “너무도 분명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었다.
‘섭리자의 사랑 앞에 사람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과 권리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소설은 사람의 편에서 나름대로 그것을 생각하고 사람의 이름으로 그 의문을 되새겨본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이야기가 ‘우리 시대 영상예술의 달인’ 이창동 감독에 의해 새 영화작품으로 제작됨을 계기로 한 번 더 꼼꼼히 읽으며 손질을 보태고난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제 울음소리조차 낼 수 없는 피투성이 인간의 영혼가 다시 마주하게 된다”고 적어놓았다.
「밀양-벌레 이야기」는 1985년도에 발표된 단편으로 영화 ‘밀양’이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선정되면서 단행본으로 빛을 보게 됐다.
새로운 독자들을 위해 다시 선보이는 만큼 소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이미지와 결합했다. 네거티브필름과도 같은 이미지들은 한 아이가 사라져가는 과정과 아이가 사라진 뒤 남은 자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삽화를 담당한 최규석은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을 수상한 만화계의 촉망받는 젊은 만화가. ‘적발’하고 ‘고발’하는 듯한 선 굵은 삽화는 책에 무게를 더한다.
‘축제’ ‘서편제’ ‘천년학’ 등 영화로 풀어낸 소설 중에 유독 그의 작품이 많다. 그가 지닌 힘이 분명 소설 속에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