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초여름의 고향 풍경 - 박상봉

박상봉(군산경찰서 생활안전과장)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

 

나무 한 그루도 오랫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깊고 넓은 존재감을 드리우면 하나의 문화가 되고,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고향마을 입구를 언제나처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나 수십년의 손때가 묻은 만년 필 따위가 피붙이나 친구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맨 가슴으로 떠나는 열차의 종착역에서는 풍화되어 가는 기억의 괘도를 따라가 그곳에 당도하면 희뿌옇게 바랜 추억도 강물처럼 다시 선명해진다.

 

“언제고 돌아와 주세요”, “한번도 당신이 내 곁으로 온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내가 당신께 다가갔고, 당신은 그 순하디 순한 몸짓으로 내 고단한 걸음을 안아 주었습니다.

 

아장아장 내가 걸음을 처음 배울때도 또 그 걸음으로 고향을 떠나올 때도 당신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지요.

 

내 옆구리에 사랑 하나를 끼고 돌아갔을 때도 당신만은 나를 비웃지 않았습니다.

 

살아갈수록 슬픔만 두터워 지는게 인생이라더니 생각할수록 눈물나는게 고향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멀리 있어도 내가 어른이 되고 부터는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아도 당신은 내 가슴속에 살아 있는 따뜻한 추억의 거울입니다. 그곳에 가면 아직도 따뜻한 추억이 남아 있다. 그곳에 가면 아직도 내 서툰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에 대한 기억이 나를 다시 불러 세울때면 언제고 달려가 바라보는 풍경 그 미루나무 숲 그늘 어딘가에 분명 잊혀지지 않는 내 질긴 기억하나가 쇠똥처럼 말라 붙어 있다.

 

보리 수염처럼 옆구리를 간질이던 그 언덕의 바람이 그립다.

 

고향 정자나무여! 오늘은 너무나 날씨가 맑고 가을 하늘처럼 높게만 보여진다.

 

도시 길 옆이나 농촌 이곳저곳에 빨강 철쭉들이 봄향연을 뽐내더니 이제 꽃은 사라지고 실록의 풍부함이 어느덧 다가와 있다.

 

아파트 주위 휘들러쳐진 정자나무 잎들이 초여름의 그늘을 만들기 시작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늘쌍 느끼는 일이지만 그 계절이 주는 ‘행복한 의미’가 주어져 있어, 우리는 항상 행복한 마음과 수수한 마음을 갖게 되는가 보다.

 

지난 겨울에 심어논 고향 밭에 홍시나무에는 엿푸른 감나무 잎이 무성히도 나왔다. 대추나무에도 살구나무에도 그렇다.

 

심어놓은 채소나 나무는 거짓말 없이 그 은혜를 고스란히 사람에게 던져주는 것 같다.

 

그래서 여름에 주는 실록의 풍성함은 뭉크의 ‘검은 절규’같은 짜릿한 전율을 주기도 한다. 벌써 날씨가 여름을 치닫고 있다. 밤낮없이 근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군산 지역경찰 직원들에게 잠시 소낙비 같은 시원함을 주는 시간을 갖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상봉(군산경찰서 생활안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