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어려운 세상 용케 잘 헤쳐 왔노라 자랑하지만 나는 그저 세월에 떠밀려 부대끼며 간신이 뒷줄에 서서 겨우 낙오하지 않고 이 지점까지 도달한것이 자랑이랄까 행운이랄까. 돌이켜 보면 일제 때부터 철이 좀 일찍 들어서 그 때의 학정을 감지할 수 있었고 해방 후로도 갖은 수난과 고초를 겪었으면서도 그 어려웠던 시절이 자랑 같은 추억으로 남아 묵은 필름을 되돌릴 때도있다.
거기에는 푸른 물감 같은 재미가 군데군데 묻어 있기도 하지만 험한 세파 먼저 벗어던지고 새 세상 찾아 앞질러 가는 통에 말벗이 끊겨 편지 쓸 일도 없어졌다. 20대초까지 단짝 친구인 P가 고향 떠나 서울 살면서 일이 년 만에 한 번 만날 동 말 동하는데 그 사람이나 만나야 지금도 불알친구로 내 속 제 속 드러내 놓고 속말도 풀어놓는다. 제발 너나 좀 같이 오래 살자 속말 터놓고 실컷 하게.
/송재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