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회남자' 다양한 가치.문화 병존하는 세상

유안 씀·김성환 엮음/ 살림

유방의 손자 유안이 수천명의 방사를 불러모아 편찬한 책 '회남자'와 엮은이 김성환 군산대 철학과 교수. (desk@jjan.kr)

유안(기원전 179∼기원전 122)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손자로, 반역죄를 짓고 자살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남왕에 봉해졌다. 황권을 강화하려는 중앙집권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지방분권세력의 갈등이 극심한 시대를 산 유안은 특히 학문과 사상으로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과 단일한 이념을 추구한 무제와 유교 세력이 유안을 견제했고, 결국 그는 아버지처럼 반역죄에 걸려 자살했다.

 

비극으로 끝난 불운의 역사. 유안의 빈 자리에는 「회남자」(살림)가 남아있다.

 

김성환 군산대 철학과 교수가 현대적 감각의 고전시리즈 ‘e시대의 절대사상’ 스물일곱번째 책으로 「회남자」를 다시 썼다. 청년시절, 고려대 철학과에 들어가 사회변혁에 관심을 두었지만 욕망의 문제를 치유하지 못하는 서양근대의 한계를 고심하다 동양철학에 이르게 됐다. 그는 “동양철학하면 일반적으로 유교를 중심으로 한 충효나 도덕, 윤리, 규범 등을 떠올리지만 동양철학은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회남자」는 유안이 수천 명의 빈객 방사(方士)들을 불러모아 편찬한 책이다. 한대 이전의 지식과 사상을 집대성하면서, 단순한 총괄을 넘어 통일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김교수는 “지식인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해 패러다임을 형성해 나가는 지식통합사회, 즉 현대 사회에 맞는 열린 정신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덧붙였다.

 

「회남자」는 한대 이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해 기록 대부분이 소실됐다. 그동안 서점에 나와있던 「회남자」가 당시 사건이나 사상을 나열하듯 소개한 역사서이거나 학위 논문인 연구서에 그쳤다면, 김교수는 「회남자」가 가지고 있는 현대적 의미를 살피는 데 비중을 뒀다.

 

“「회남자」는 놀라운 고전입니다. 오늘날 펼쳐지는 유치한 민족주의의 악순환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철학적 이유와 해결방법에 대해 치밀하게 논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고 국가나 종교, 지역, 이념 등 자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주는 조건들에 집착해 여기에 절대적인 사고를 부여한다. 중심에 대한 갈망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러 민족과 나라들과 조화를 이뤄내지 못한다. 대신 새로운 미래는 중심에 포섭되기를 거부하는 변방에서 발견되고 구현될 수 밖에 없다. 김교수는 “「회남자」는 이런 변방의 시각에서 철학적 통찰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회남자」는 유교 경학(經學)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도가 황로학(黃老學)의 견지에서 그때까지 축적된 사상과 문화, 학문을 집대성하고 새롭게 해석했습니다. 그 목표는 단일패권주의를 해체하고 다양한 가치와 문화가 병존하는 세상을 구현하는 데 있었습니다.”

 

김교수는 「회남자」를 통해 한대에 형성된 중국 문화와 사상의 원형을 살피는 한편, 중국 문화의 주류가 된 이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기회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화주의와 유교의 부활을 꾀하는 중국의 국가적 욕망을 철학적으로 사유하고 비판하는 안목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며 “중국 고전에서 중국의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한 종류의 악기를 수백 명이 똑같이 불어대고, 한 가지 반찬으로 밥상을 가득 매우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런 음악과 밥상은 생각만으로도 우리를 질리게 만든다.’

 

‘그런데 현대인은 소매가 없는 반소매 옷을 입고서도 왼손을 오른팔 아래에 대고 술을 따른다. 왜 그래야하는지 묻지 않으면서, 남들이 그러니 그게 예법이라고 여기고 그냥 따라한다.’

 

악기와 반찬의 ‘차이’야말로 음악과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형식적인 주법은 「회남자」의 지적처럼 ‘한 시대의 흔적’에 지나지 않는다.

 

김교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명구들도 많아 인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수양서로도 의미가 있다”며 현대인들에게 「회남자」를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