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군이 100년이나 호강시켜 줄 듯이, 천리 타향에 불러다 놓고 먼저 떠나 셨다니 고생이나 어려움이 크시리라 짐작합니다.
일기장을 뒤적이다 김 선생님과 어울린 아름다운 옛 추억을 하나 찾아 내었습니다.
그땐 정말 아름다운 젊음의 꽃시절이었지요. 반 백년 전이었으니까요. 한 직장에서 근무할 때였죠. 해마다 5월이면 학생 신체검사를 했으며, 그 날은 전교생 오전 수업만 하고, 교무실에 모두 모여 검사 결과를 열심히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사각사각 잉크 묻힌 소리 뿐 조용했던 분위기였습니다.
퇴근 시간이 임박할 때였습니다. 바로 앞 자리에 앉았던 김 선생님의 눈빛이 “날 따라 오세요. 복도에 가서 좀 쉬고 옵시다.”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 뜻 없이 따라가자, 때 맞춰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우리만 직장 가가이에 집이 있고, 모두 집이 멀어서 서둘러 퇴근해버리고 둘만 남았었습니다. 그 뒤에도 소낙비가 무섭도록 내렸는데 넓은 건물 안에는 우리 뿐이었습니다.
그때 일을 기억하시나요? 우리에게도 그런 때가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곽병술(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