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 암을 치료하려면 암세포의 근원인 종양제거하고 항암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처방입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다면 의사의 처방은 명료할 것이다. 환자와 가족도 의사의 처방에 수긍할 것이며, 종양을 제거하기까지 무수한 고통과 싸워낼 것이다. 이처럼 건강이란 개인에게 뿐만이 아니라 가족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요소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건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고이래로 건강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라고 말해 왔던 것이다.
신체적 건강이 개인에게 있어서 이렇게 소중하듯 사회적 건강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위하여 정말 소중하다. 썩고 부패한 사회에서는 정의가 살아 있을 수 없다. 법도 권위를 잃고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한 합리적인 예측이 불가능하다. 결국 많은 사람의 행복은 사라지고 분노와 좌절만 남게 될 것이다. 독재정권이 판을 치던 70년대, 80년대를 상기해 보면 그 모습은 더욱 선명해 진다. 불법이 판을 쳐도 누구의 책임도 없던 사회였다. 반면에 약한 자나 가난한 자는 일방적으로 고통 받던 시대였다. 21세기가 된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이런 구태는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이번 IOC총회의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보면 우리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결과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실망이 다시 도전할 수 있기에 치유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대물림되지 말아야할 상처이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겪지 말아야할 불의함이기도 하다. 따라서 불의라는 종양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건강한 사회민의 양성을 위하여 분명하게 제거해 나가야 할 요소이다. 그런데 우리는 불의에 대해서 온정주의로 기우는 경우가 많다. 약한 자나 가난한 자에게는 온정의 손길이 펼쳐지지 않으면서도, 권력자나 가진 자 앞에서는 그들의 불의에 대해서도 온정주의를 발동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내가 아는 사람이기 대충대충 넘어가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를 만들 책임을 지고 있는 위치에 있다면 불의가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의사는 의사로서, 법관은 법관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 할 때 건강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의사의 입장에서 우리의 사회와 도시를 바라보곤 한다.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계획이나 대충대충 이루어진 계획은 사고유발과 직결된다. 생명을 잃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생명을 다루는 의사처럼 도시를 대하려고 한다. 내 자녀와 이웃이 교통사고로부터 보호받고, 범죄로부터 보호받는 도시를 만려고 한다. 이것이 안전한 도시,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황지욱(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