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관람객 스스로 생각하는 그림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조영남·한길사

이 세상에는 ‘가수’나 ‘화가’ 말고도 ‘화수’(畵手)가 있다.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는 ‘화수’.

 

어정쩡한 폼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목소리로 ‘화개장터’를 부르고, 그림이랍시고 화투패를 다닥다닥 붙여놓는 조영남. 그는 자기 자신을 ‘화수’라고 부른다.

 

“영남씨, 이 그림은 무슨 뜻이에요?”

 

그는 사람들이 음악을 가지고 “영남씨, 이 노래는 무슨 뜻이에요?”하고 묻는 질문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것은 음악보다 미술이 훨씬 어렵다는 얘기다. 조영남은 “자칭 화가인 내가 보기에도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루 저녁에 꼬박꼬박 100쪽씩 썼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한길사).

 

‘칸딘스키의 그림은 위 아래 양옆이 어딘지를 구별하기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칸딘스키 스스로가 그림을 뒤집어 놨다가 깜짝 놀랐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본격 추상화가 시작됐다는 얘기다.’

 

‘처음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보았을 때는 정말 생소하게 보였다. 저게 무슨 작품인가, 저게 무슨 조각인가. 그러나 10년 넘게 자주 보게 되자 점점 익숙해지고 점점 귀엽게 보이기 시작했다.’

 

2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그 때 그림들은 알아먹기가 쉬웠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거나 귀족의 초상화거나 진짜 과일보다 더 과일처럼 그려진 정물화였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머리가 아파졌다.

 

“형! 내가 현대인이잖아. 그런데 내가 현대미술을 보면 뭐가 뭔지를 모르겠는 거야. 내가 현대인인데 현대인인 내가 알아먹을 수 없으면 현대미술이 아니라 미래미술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냐?”

 

언젠가 전유성이 조영남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를 치는 조영남은 그러나 “현대인이 현대미술을 알기 위해선 먼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자전거 타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해야 하듯 말이다. 30년 넘게 독학한 조영남도 잘 모르듯 미술은 정녕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관한 책들은 평생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조영남. 10년 전 쯤 톰 울프가 뉴욕 미술에 한정해 쓴 「현대미술의 상실」을 읽고 현대미술에 관해서도 얼마든지 흥미로운 책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는 그는 세계 현대미술 전체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문제아’로 낙인 찍힌 그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희박한 걸로 고른다는 것이 현대미술에 관한 책이기도 했다.

 

조영남은 “이제 우리는 현대미술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150년 남짓한 현대미술에서 그는 지금까지 두 번의 ‘위대한 꺾임’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첫번째 꺾임은 고전미술과 단절하면서 관람객이 스스로 생각을 하게끔 그림을 그린 마네, 세잔, 피카소의 출현이며, 두번째 꺾임은 1900년대 초 뒤샹이 어느 회사에서 만든 제품인지도 모르는 변기통을 뗴어다가 전시장에 올려놓고 시치미를 뚝 뗀 사건이다. 이제 세번째 꺾임의 시대. 이를 최후의 꺾임이라 말하는 조영남은 영국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건너온 팝아트를 주목하고 있다.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에서 그가 다루는 화가들은 120명이 훌쩍 넘으며, 함께 수록된 작품도 150여점에 달한다. 책 말미에는 본문에 소개된 주요 인물을 소사전 형식으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