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연어」가 출간 10년 여만에 100쇄를 돌파했다. 일종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물론 「연어」가 한국문학사에서 최초로 100쇄를 넘어선 책은 아니다. 「광장」(최인훈),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태백산맥」·「아리랑」(조정래) 등 한국문학사의 기념비라 할 만한 여러 작품들이 이미 100쇄를 넘긴 바 있다. 하지만 「연어」의 100쇄 돌파는 분명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만한 하다. '어른을 위한 동화'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100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어」가 뜻깊은 것은 「연어」가 10년간 독자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연어」가 정작 뜻깊은 것은 「연어」에 담긴 깊이 있는 성찰과 그것을 표현해낸 방식 때문이다.
「연어」는 모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부화하고 죽는 연어들의 생애를 그린 우화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내용도 형식도 간단하다. 여기, 한 무리의 연어떼가 있다. 이 연어떼는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자기가 태어난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각자 알을 수정시키고는 죽어간다. 그저 우리가 연어에 대해 알고 있는 일생을 담담하게 이야기로 풀어갈 뿐이다.
그런데도 「연어」에서 만나는 연어는 특이하다. 「연어」는 연어에 관한 신기한 사실을 늘어놓기보다는 연어를 특이한 방식으로 인격화하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하는데, 그 과정에서 탄생한 아주 매력적인 인격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여느 연어들과 달리 은빛을 지닌 이 연어는 일반 연어와 달리 자신만의 내면을 갖고자 한다. 해서, 이 '은빛연어'는 연어 무리들과는 동떨어진 단독자로서의 존재하고자 한다. 당연히 연어 무리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못마땅하다. 강으로 회귀하는 것 자체도. 이 막무가내의 자유주의자는 그러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몇몇 연어(누나, 그리고 '눈맑은연어')의 도움으로 살아남으면서, 또 '초록강물'에게 아버지가 걸었던 '연어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혼자만의 삶을 접는다. 그렇다고 해서 연어 무리의 습성을 그대로 따르지도 않는다. '은빛연어'는 자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에도 필요한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 그러니까 자기의 발전과 공동체의 번영을 동시에 추구한다. 해서 비난하는 대신에 냉소하며, 냉소하는 대신에 대화하며, 자기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목소리를 자기화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혼자만 힘겹고 고통스럽게 폭포를 거슬러 의미 있는 회귀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설득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준 안락한 길(그러나 그 길에 이끌리면 먼 훗날 종족 전체가 도태될 수 있는 위험한 길)을 가려는 연어 무리 대부분을 '연어의 길'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아름답게 죽어간다. 아니, '삶의 모든 에너지를 세상 속에 다시 돌려주고 그들은 하얗게 변한 가벼운 육체로 떠오'른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통해 「연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이미 만들어진 길이나 지성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스스로의 지성과 길을 만들어라.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가질 것이며 결단을 내려라. 그렇게 단독자가 되거든 이제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자기를 지키면서 자기를 버려라. 그리고 먼 미래를 위해 죽어라. 그것이 진정한 연어의 길, 아니 인간의 길이다.'
최근의 포스트 담론에 익숙한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마저도 지배되고 있는, 그래서 '나는 사유하지 않는 곳에서만 존재한다'는 지금, 이 시대에 단독자가 되는 것이 가능이나 하겠느냐고.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 꼭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겹기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연어」의 연어들이 타자가 만들어 놓은 안락한 길을 거부하고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자신의 참가치를 발견했던 것처럼. 그렇다면 단독자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인간이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생명체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결국 「연어」는 우리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한 인간의 길을 아주 감동적인 방식으로 환기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힘내라 「연어」?!
/본지서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