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先帝)께서는 창업의 뜻을 절반도 이루시기 전에 붕어하시고, 지금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신(臣)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 길을 떠나거니와, 떠남에 즈음하여 표문(表文)을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명문(名文)으로 널리 알려진 ‘출사표(出師表)’의 맨 처음과 끝 문장이다. 이 출사표는 1800년 전 제갈공명이 위(魏)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하는 날 아침, 촉제(蜀帝) 유선에게 눈물을 흘리며 바친 글이다. 두번에 걸쳐 올린 이 글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과 황제에 대한 충성, 천하를 통일하여 백성을 구하려는 큰 꿈이 절절이 배어 있다.
이 출사표가 요즘 제철을 만났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마다 출사표를 던지고 있으니 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4월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한 이래 선관위에 등록한 사람이 73명에 이른다. 11월 24일까지 받는다니 100명을 훌쩍 넘지 않을까 싶다. 가히 기네스 북 감이다. 무소속이 많고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치인 교수 목사 승려 보모 역술인 야채상 문구상 농민 부동산임대업자 미화원 청원경찰 주부 등 직업도 다채롭다. 한 마디로 ‘개나 걸이나…’다. 차라리 1960년대부터 1997년까지 선거때마다 얼굴을 내밀던 카이젤 수염의 진복기 후보가 그리울 지경이다.
문제는 이들이 얼마나 대통령직을 이해하느냐 하는 점이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어록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초대 G.워싱턴은 “대통령이 되는데는 사형대로 가는 죄인의 기분과 다름없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J.애덤스는 “4년 동안의 임기는 나의 평생에 가장 비참한 시절”이라고 했고 A.잭슨은 “나의 대통령 시절은 고급 노예 생애”라고 회고했다. 또 W.S.태프트는 “백악관은 세계에서 가장 고독한 곳”이라고 털어 놓았다. 반면 F.D. 루스벨트는 “매우 피곤한 직책이긴 하지만 나는 충분히 이것을 즐겼다. 왜냐하면 적어도 국민 전체의 최대 권익을 위한다는 목적아래 국가의 대기구를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불쾌한 일이 아니니까”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지금은 대통령직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판단을 요구한다. 후보들의 출사표에 얼마나 국가를 생각하는 비장한 각오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