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칼럼] 정상회담, 통일의 밀알 됐으면 - 공요셉

공요셉(신부·카톨릭신학원 교수)

김을 매는 농부의 부지런함보다 더 빠른 부지런함으로 풀들이 자라나는 늦여름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앗을 뿌려놓고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그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 열매를 맺지만 그 사람은 그 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른다고 하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늘나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조금씩 이루어져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에 비로소 완성되겠지만 우린 그 과정과 완성의 때를 알 수 없다는 비유입니다.

 

어제는 제62돌 광복절이자 제59돌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일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36년, 비공식적으로는 더 오래 우리 민족을 수탈하고 억압해온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되어진 이날, 잃었던 겨레의 빛을 되찾은 기쁨을 광복(光復)이라 표현한 것이겠지요. 유학시절 기차 속에서 동양역사에 관심 많은 한 독일인과 얘길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과의 대화중에 일제 식민통치하에서 감내해야 했던 우리 민족의 고통이 세계대전 중에 유다인들이 겪었던 고통에 버금가는 것이었음과, 제국주의의 피해자인 우리 민족이 가해자인 옛 독일이 겪었던 분단의 아픔을 아직까지 겪고 있어야 함에 대해 울분을 토로했던 기억이 납니다. 해방과 더불어 빛을 되찾은 광복의 기쁨의 뒷면엔 분단의 슬픔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함께 해온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이 아픔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요?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민족도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종살이 하던 이집트를 탈출한 유다인들은 돌팔매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의 시대에야 통일왕국을 이루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이르는 80여 년간 고대 근동의 강대국으로 부상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반란이 일어나 나라는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나뉘게 되어 쇠퇴 하게 됩니다. 두 형제국은 서로 다투며 이웃 강대국의 힘을 빌려 서로를 견제하려다 결국 자멸하게 됩니다. 이후 그리스와 로마로 이어지던 세계지배권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왕권을 회복했던 유다인들은 서기 70년경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 1948년 현재의 이스라엘을 건국하기 까지 역사 속에서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분단과 패망의 아픔 이후 오랜 유배생활과 식민통치의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께 선택되었다는 그들의 믿음이 오늘날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전 세계 어떤 민족에게 뒤지지 않는 역량을 발휘하는 유다인들이 있게 했습니다.

 

우리 한민족, 배달의 겨레도 지난 역사 속에 숱한 고난을 이겨내며 단일민족, 통일국가를 이루어 왔었습니다. 광복의 기쁨과 더불어 분단의 슬픔을 안고 살아온 아픈 역사가 회갑을 지나 고희의 나이를 향하는 이때, 다행히 오는 28일 6.15남북공동성명의 정신을 잇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기쁜소식인 복음(福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리와 명분을 따지고, 다가올 대선에 미치게 될 정치적 반사이익 등의 복잡하고 이기적인 계산과 욕심을 떠나, 참으로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이 좋은 기회가 일회적인 만남에 그치지 않고 겨레의 소원인 통일을 향한 한 알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우리가 자고 일어나는 나날에 싹이 트고 자라나 우리 민족을 하나로 일으켜 세우는 커다란 나무가 되어주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