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에 일었던 ‘전태일충격’은 구호로는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그들이 절절히 원할 때 친구가 돼주지 못했던 데에 따른 광범위한 자책현상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자신의 몸을 불 질러 장렬히 분신함으로써 70년대 운동가들을 ‘현장’으로 불러들였다. 사회개혁에의 투신과 일신의 안일 사이에서 갈등하던 80년대 운동가들에게는 결단의 단초를 제공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한 알의 밀알’의 의미를 나는 전태일을 통해 석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한동안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로만 표기됐던 원 저자가 조영래 변호사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조영래는 43세로 타계하기까지 누구보다 ‘전태일적’ 삶을 살았다. 전태일과 조영래 두 스승을 길러올린 이 책의 백미는 이 부분, 결행 전 전태일의 독백이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의 행적을 추적해가는 글도 좋지만 무엇보다 전태일의 육성이 주는 전율과 감동은 압권이다. 읽는 이의 삶의 방식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몸에 소름 돋게 하고 진심으로 승복하게 하는 글은 현학적인 것도 미문도 아니라는 것을 전태일의 일기를 읽으며 알았다. 얄팍한 인텔리의식과 자만, 이기심으로 썩어있는 병든 영혼을 무장해제시키는 진정성과 혼이 이 책에는 있다. 20년의 몇 배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단단한 진실이다. 내 서가의 많은 ‘출판물’들 속에서 「전태일평전」이 오롯이 ‘책’으로 건재하는 이유다.
/김선희 우진문화재단 운영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