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세리(稅吏)

부산 국세청장이 건설업자 김상진씨로 부터 뇌물을 받고 세금을 유야무야 해주고 심지어 제보자의 신원까지 누설한 것은 상궤로부터 한참 벗어난 행위이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지방 국세청장까지 오를수 있었는지 의아할 뿐이다.

 

조선 사회에서 세금을 걷는 관리를 세리(稅吏)라고 불렀는데 이말의 뉴앙스가 그리 좋지못하다. 공자가 논어에서 폭정맹어호(暴政猛於虎)라고 한것은 난폭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도 더 무섭다는 뜻이다. 난폭한 정치란 백성으로부터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어들여 백성을 못살게 하는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부역(賦役), 군역(軍役), 조세(租稅)의 삼대 의무를 가졌는데 이중에서 백성으로부터 가장 원성을 산 것은 부당한 조세였다. 가렴주구(苛斂誅求)란 고사성어도 여기에서 나온것이다.

 

우리 전통사회 에서는 조세를 거두는 세리에게 뇌물을 바치는 제도가 다양화 되었었다. 소위 인정미(人情米)라는 뇌물도 있었는데 세리들이 세금을 걷는 노고에 대해서 인정을 베푼다는 뜻에서 조세 한가마니 당 두되를 바쳤다. 그리고 조세 서류를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값 이라는 명목으로 조세 한 가마니당 두되를 거둬들였다. 또 세곡(稅穀)을 두사람이 운반하는데 그 노고에 대한 품값조로 수탈했고 세리들의 출장비조로 토지 결당 너말씩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또 고을 원님의 밥상에 오르는 찬값, 원님의 자는 방에 땔 나무값을 별도명목으로 받아갔다. 이같이 별의별 뇌물이 판을 치는 가운데서도 청빈하게 살었던 세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때 김수팽 이라는 사람은 어느날 나라의 녹(祿)을 먹고있는 아우집에 들렀는데 아우 부부가 큰 단지들에 염색원료인 남(藍)을 잔뜩 만들어놓고 파는 것을 보았다.이것을 본 김수팽은 단지들을 쏟아버리고는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이 남(藍)까지 팔아 돈을 벌면 남을 팔아 먹고사는 백성의 영업을 침범하는것”이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있다.

 

세금은 백성들의 삶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세무행정이 상당히 투명해졌다고는 하지만 부산 국세청장의 이번 경우처럼 뇌물은 항상 세리를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