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허여문기 - 제사 걱정 재산 걱정

1601년 오씨가 아내와 자식에게 제사와 노모를 잘 모실 것을 조건으로 재산을 나누어 준 문서 (desk@jjan.kr)

그리운 고향길이 고생길이 되면서 도로에 깔아버린 시간 만큼이나 기다리는 것은 여자나 남자나 제사, 성며, 인사치레 등등의 명정스트레스 일 것이다. 명절 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좀 더 있다 가라’는 부모님의 말씀이라는 조사결과는 웬지 씁쓸하기만 하다. 또 추석같은 명절 때 드라마 소재로 빠지지 않는 것은 부모님과 자식들간의 갈등이다. 부모님의 재산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이제 상식이 된지 오래다.

 

세대가 변하면서 제사상도 맞춤 시대가 왔고, 차례상이 호텔 콘도에 차려지는 풍경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어서, 전통적 관념으로서의 제사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조금은 철학적 담론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음직 하다. 전근대 시대 아니 한 세대 이전까지만 해도 추석이 갖는 의미는 남달랐다.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기 위해 친척들이 모여들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보면서 가문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전통적 통과의례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축제이기고 했고, 조선사회를 지탱하는 유교적 도덕 정체성이기도 했다. 아들을 낳아 가문을 잇는 것과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이율배반적 행태가 모순되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사회가 가지는 중요한 힘이기도 했다.

 

그러한 힘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었던 것은 바로 재산의 분배였다.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과거에 급제했다는 이유 등 갖가지의 명목을 붙여서 자식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는 것은 조선시대 양반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일상적인 것이었다. 그 대상에 남녀구분이 없었음은 물론이거니와 자식들간의 화목을 재산 분배 문서에 꼭 써넣었다.

 

1601년(선조34) 2월 19일에 사옹봉사(司饔奉事)인 오씨는 아내와 아들에게 설날, 추석 등 사대명절과 제삿날의 제사를 정성을 다해 받들 것과 늙으신 어머니를 잘 봉양할 것을 당부하면서, 그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주었다.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문서를 허여문서(許與文書)라 한다. 오씨는 이 문서에서 16칸짜리 기와집을 포함 전답 수십마지지와 노비 6명을 아내와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재산을 나누어준 목적은 오로지 제사를 잘 모시는 것과 늙은 노모를 잘 봉양하는 것이었다. 5촌 조카 오정식과 오정섭이 증인과 보증인이 되어 서명을 하고, 사헌부 감찰 김환도가 문서를 작성하였다.

 

오씨가 가졌을 전 제산을 아내와 자식에게 물려준 것은 아마도 늙은 노모가 살아계시는 데 자신의 건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먼저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걱정은 아내와 자식들이 제 때 제사를 지낼 수나 있을까? 자신이 못나서 저 세상에서 조상 뵐 면목이나 있을까 하는 등등의 걱정이 이러한 문서를 만들게 한 것이다. 재산을 둘러싼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부모의 유지를 잘 지키도록 하는 “부모재산유지관리법”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제사를 모시고 조상을 기리는 미덕을 이어가는 방법은 없을까?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