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회사 경영으로 바쁘다’는 핑계를 뒤로하고, 어린 시절 자랐던 곳을 둘러보며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김제의 원평(초등학교)을 거쳐 모악산 자락의 금산사, 그리고 전주 중앙초등학교 교정에 이르기까지 어릴 적 동심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 집이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이야? 너무 작다.” 등 둘째 녀석의 호기심 어린 질문이 쏟아졌고, 삼삼오오 뛰놀고 있는 운동장이 아이 말대로 작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포근하고 아늑한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한편으로 희뿌연 흙먼지를 흩날리던 신작로가 아스팔트길로 바뀐 것 외에, 30~40년이라는 시간이 멈춰버리기라도 한 장소에서 무언가 허전함이 다가온 하루이기도 했다.
필자는 일 년에 두 차례는 주요 계열사 임원들과의 회의를 해외에서 하고 있다. 임원들이 세계 경제의 흐름과 변화를 직접 현장에서 느끼면서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었으면 하는 바램 때문인데, 올 두 번째 회의는 중국 상해에서 했다. 방문 길에 상해에서 98km 떨어진 우리 계열사의 현지공장이 있는 장가항(張家港)을 2년 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필자 나름의 예상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빠르게 변해 있었다. ‘기업의 성장이 곧 지방정부의 성장’이라는 기치 하에 2006년에는 전국 경제종합발전지수 100대 현(시)중 서열 3위를 차지하였다. 장씨(張氏) 일가의 조그마한 집성촌이었던 한 어촌이 10여년 만에 인구 120만 명의 잘 계획된 공업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중국의 성장을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있다. 필자 역시 상해에 갈 때마다 변화의 속도를 피부로 느끼는데, 교통 혼잡을 피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항시 이용하는, 푸동공항에서 시내인 롱양역까지 8분만에 주파하는 ‘쯔시엔푸’라는 자기부상 열차가 그것이다. 중국은 이런 기술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푸동공항에서 290km 떨어진 항주(杭州)까지 29분만에 주파하는 자기부상철로공사를 시작하고 있다. 기마대의 ‘스피드’로 인류 역사상 최대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스칸을 ‘쯔시엔푸’에서 느꼈다면 필자가 너무 앞서가는 것일까. 중국은 더 이상 만만디(漫漫的)의 땅이 아니다.
‘2007 남북정상회담’이 10월 2일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를 모든 국민이 염원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특히 남측이 제안할 ‘서해 평화 벨트(가칭)’에 관심이 간다. ‘서해 평화 벨트’ 구상은 인천 - 개성 - 해주를 육지로 연결하고 서해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는 것이 주요 골자로 되어 있다. 필자는 올 초 출간한 『텐배거-10배 성장전략』이라는 졸저에서 약간은 다른 측면에서 ‘서해벨트’를 상상한 바 있는데, 필자는 무한한 가능성의 땅 새만금과 스피드에 방점을 찍었었다.
(중략)...서해벨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치며 상상한다. 문화와 물류 그리고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도시들 이른바 ‘서해벨트’, 우리 민족의 모순과 희망을 담고 있는 도시 개성, 세계 최대의 물류허브를 꿈꾸는 인천 그리고 거대한 세계문화의 땅 새만금, 이 서해벨트를 10분 내외로 넘나드는 자기부상열차가 눈앞에 펼쳐졌다. ...(중략)
전라북도와 중국을 넘나들었던 올 9월은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서해(전북)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다. 더 이상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이 난무하지 않는 전북. 기업인의 창의성, 지방정부의 리더십, 주민들의 열정을 모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전북. 이런 고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라고 못할게 없다. 중국의 조그마한 어촌도 두바이 못지않게 오늘도 묵묵히 가치를 창조하고 있지 않은가.
/이상직(KIC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