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이 철거될 때 보면 정말 인정사정없다. 마치 한 번에 요절낼 듯이 포클레인이 건축물을 찍고 넘겨버린다.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그 단단하던 콘크리트도 동강동강 떨어져 나간다. 또 벽돌이나 석고보드는 먼지만 자욱이 휘날리며 사정없이 짓이겨진다. 그렇게 건축물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몇 십 년 동안의 흔적을 뒤로 한 채, 그냥 앉아서 고스란히 해체 당하고 만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 집도 처음엔 어느 무주택서민의 가슴 벅찬 첫 둥지였을 수도 있고, 어느 누구에게는 신혼살림의 살뜰한 보금자리였을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재산증식의 아주 요긴한 수단이 되어, 삶의 환희와 기쁨을 한꺼번에 선사해주는 알뜰한 살림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야 어찌되었건, 집이란 그 필요가 다하게 되면 그렇게 가차 없이 처분되는 운명을 안고 있다. 옛날에는 사지를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육시(六弑)가 최고의 극형이었지만, 그것도 철거되는 건축물에 비하면 요샛말로 「깜」도 안 된다. 잘리고, 털리고, 바숴지다가 급기야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까지 몰리게 되는 것이다. 소음이 진동을 하는가 하면, 석면가루가 날리고, 미세먼지가 하늘을 자욱이 뒤덮는다. 그렇게 건축물은 너나할 것 없이 「잔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래도 몇 년 전, 서울 한남동 외인아파트 해체는 실로 장중하였다. 온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남산을 가리고 서있던 외인아파트는 파괴공학의 첨단기술로 그냥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 또 일제의 잔재가 묻어있다고 해서 호된 질책을 받아왔던 중앙박물관 해체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앙 돔의 상부 첨탑을 해체할 때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보물을 다루는 듯 극진했다. 사라지는 것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영상으로 보여준 상당히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런 건 사회적인 관심과 이목이 집중된 몇몇 건축물에 한정된 얘기다. 대부분의 철거현장에서는 자욱한 소음진동과 먼지 사이로 포클레인의 굉음만이 요란할 뿐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 한 채, 하나의 건축물이 지어졌다가 무심하게 해체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저 덧없이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인생을 떠올리게 된다.
/삼호건축사사무소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