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참으로 이런 엽서를 써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해 본 일일세. 그래, 친구가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겠지. 그래도 죽마고우에 어찌 견줄 수 있겠나. 자네야 말로 나의 참된 죽마고우 아니던가.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물자가 정말 귀하던 시절. 아직도 지리산 지역에 잔비가 출몰하던 시절이었지. L19정찰기가 뿌리고 간 비라(전단지)를 주워 다 만든 딱지치기로, 보내던 그 때, 진달래와 아그배나무 꽃을 꺾던 봄날이며, 장수잠자리 잡아 -벌거숭아 벌거숭아 이리 오면 살고, 저리 가면 죽는다. -라며, 잠자리 유인하던 여름방학, 참외 한개 깎아 먹으며 허기를 면하던 시절, 늦게 찾아온 태풍에(나중에야 그게 사라호 태풍이었던 걸 알았지) 지천으로 떨어진 상수리치기로 보내던 그 가을, 그리도 많이 내렸던 눈 속에 내달렸던 토끼몰이의 겨울날, 친구여,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잠적해 버린 친구여. 그리고 35년 세월이 정말 끔찍스레 지나 버렸다네. 이제 나는 그대가 남긴 오직 한편의 시를 여기 소개하려 하네. 괜찮겠지.
- 내 어릴 적 종이비행기 접던 파아란 종이는 간데 업고/ 젖은 솜 같이 무거운 하늘이 이상하게도 눅눅한 바람을 안겨다 주고// 나는/ 곧잘 내 작은 손바닥을 펴 보던 죽은 누나의 사진에다가 네잎 클로버를 붙이다가/ 울다가 잠들곤 했었지// 창 앞의 노란 감꽃이 하나...../ 내 일렁이는 심장 위로 굴러 내릴 때// 나는 작은 손바닥을 펴고/ 가느다란 손금 위로 조수에 밀리우는/ 회한인 양 흐느껴 흐르는 시간을 보고 있었다.// -
친구여, 지금 어디에 있나. 떠난다는 말도 없이 오직 「나는 작은 손바닥을 펴고」이 한편 남기고 가버린 친구여. 너무나 젊은 시절 안타까움만 남기고 떠나버린 야속한 친구여.
/최상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