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칼럼] 흙집짓는 '교무목수'의 바람 - 안성원

안성원(원불교 수계농원 교무)

나는 교화자로서의 원불교 교무보다는 시골농장에 있으면서 농사도 짓고 소도 기르며 황토 흙집 짓기와 구들 놓기를 즐겨하는 흙집 짓는 원불교 ‘교무목수’로 더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농사나 가축을 잘 짓고 길러 이익을 잘 내거나 황토 집을 아주 잘 짓는 뛰어난 목수 기술이나 토수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구들 기술을 전수할만한 나만의 특별한 기능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을 즐겨한다.

 

배우고자 찾아오는 사람이나 함께 일할 사람이 있어 찾아오면 거절하지 않는다.

 

기술을 배우러 오던지 경제적 이유에서 던지 마음이 복잡하여 일로서 잊고자 오던지 종교와 직업 나이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생태적인 삶이 어떻고 생태건축이 어떻고 하는 것보다 마음을 열어 함께 어울려 일하고 새참 때면 막걸리잔 부딪히는 것만으로 행복해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흙벽돌 쌓는 높이만큼 흙벽돌 무게만큼은 수양이 쌓이고 마음의 힘이 되지 않더라도 한 장 한 장 쌓는 그 순간만이라도 온갖 잡념과 세상의 잡다한 시름을 잊고 삶의 무게의 짐을 약간은 내려 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필요 없는 부분을 톱으로 잘라내고 끌로 파내며 거친 부분을 대패로 매끄럽게 다듬듯 나 자신의 업정을 끊어내고 다듬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더라도 하나하나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목재를 조립하며 내 집은 아니더라도 내 집보다 더 즐거워하며 땀 흘려 일심으로 일하면 이것이 참다운 수행이라 생각한다.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장작만큼 나를 태워 세상을 따뜻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타는 불길을 보며 굴뚝으로 사라지는 연기 같은 마음일망정 세상의 온기를 느끼고 전하려 한다면 된다.

 

비록 많은 아니지만 땀 흘려 일한 돈으로 교도들의 시주나 현금에 의지하지 않고 내가 머무는 기관이나 교당을 운영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한 이일이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많은 시행착오도 있다. 생각같이 좋은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교당만이 도량은 아니다. 일터가 바로 수도도량이다. 교당에서 만나는 인연은 신도외엔 없지만 일터에서 만나는 인연은 목사님도 있고 스님도 있고 종교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냥 하루만 지나면 함께 어울려 일하고 대화 하고 마음을 나눈다. 아궁이는 소나무던 참나무던 가리지 않는다. 불만지피면 뜨끈뜨끈한 구들방으로 돌아오듯 만나는 인연들과 서로 어우러져 구들방 같이 따뜻한 마음나무며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교무목수’의 바램이다.

 

/안성원(원불교 수계농원 교무)